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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원화값에 무슨 일이?… 43개국 중 40개국 통화 대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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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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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화 값이 다른 통화보다 더 가파른 기울기로 내려가고 있다. 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원화는 주요 43개 통화 가운데 40개와 견줘 값이 하락했다. 지난달 말 각 통화 대비 원화 환율을 7월 말 수치와 비교한 결과다.

지난달 원화보다 가치가 더 내려간 통화는 영국 파운드(-1.05%), 스웨덴 크로나(-1.18%), 아르헨티나 페소(-2.21%) 단 3개에 불과했다. 미국 달러(3.34%)는 물론 유로(1.58%), 스위스 프랑(1.32%), 호주 달러(1.29%) 등 40개에 이르는 대부분 통화가 원화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신흥국도 예외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인도(3.3%), 태국(3.27%), 베트남(3.05%) 등 신흥 아시아 국가 통화마저도 원화 대비 가치가 올랐다. 경기 침체를 막으려고 기준금리를 낮추며 돈줄을 오히려 풀고 있는 일본의 엔화(0.01%)보다도 소폭이지만 원화가 더 약세일 정도다.

강(强)달러를 넘어서 ‘킹 달러’라고 불릴 정도로 달러화의 초강세가 이어지면서 대부분 통화 가치가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한국 원화가 유독 약세다. 이달 들어 낙폭과 변동성이 더 심해졌다. 하루 사이 10원 안팎 원화 값이 내리는 ‘금융위기급’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달러당 원화 값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하락한 1371.4원에 거래를 마쳤는데, 불과 3거래일 사이 1330원대에서 1370원대로 수직 하강했다. 1400원 선 돌파도 시간 문제란 공포가 시장에 팽배하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근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재차 확대되며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며 “이는 대내 요인보다는 주로 대외 여건 악화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높아진 환율 수준(원화 가치 하락)과는 달리 대외 건전성 지표들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ㆍ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흑자, 대외 채무 비율 등 지표가 건전하니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려도 너무 내리는 원화 값은 다른 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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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수출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금리 인상기를 맞아 약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이다. 원화 가격이 추락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한ㆍ미 금리 역전(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현상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기축통화인 달러까지 보유한 미국이 한국보다 더 높은 금리를 쳐준다고 하면서, 달러를 사기 위해 원화를 파는 ‘원화 투매’가 이어지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통제가 심한 다른 신흥국에 비해 한국은 자본시장 장벽이 낮은 편인데 주가, 원화 가치 등이 올라갈 때도 많이 올라가지만 내려갈 때도 유난히 많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위기 조짐이 있을 때마다 부각됐던 ‘ATM(현금 인출기) 한국’의 한계다.

양 교수는 이어 “과거 한ㆍ미 금리 역전 현상이 두 차례 있었는데 급격한 자본 유출이 없었던 건 당시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흑자였기 때문”이라며 “이전과 달리 현재는 무역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나고 있는데 미국이 0.5~0.75%포인트씩 금리를 빠른 속도로 더 올린다면 외환시장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원자잿값이 안정되고 반도체 등 수출 경기가 크게 반등하지 않는 한 시장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침체 경보가 울리고 있어 전망은 어둡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불어난 한국의 가계 빚과 국가채무 등 취약성도 부각되고 있다.

당장 원화 값 추락에 제동을 걸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지금의 원ㆍ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에는 차이가 있다”며 “과거엔 안전성(건전성)의 문제였던 반면 지금은 수익성의 문제(수출 부진)라는 점이다. 정책의 힘으로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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