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
“국악의 어법에 더해 창작곡 해석할
참신한 지휘자 필요성 제기”
멘토 수업·마스터클래스는 물론
총보 제공·각각 7곡 15회 지휘 연습
차세대 지휘자 양성해 무대 기회 제공
프로젝트가 실전 지휘 경험의 현장
국악적 해석 배우고, 지휘자 소양 길러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의 마지막 일정인 내부 시연회에서 지휘자 유숭산은 황호준 작곡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를 연주했다. 이 곡을 연주하며 그는 “6개월 전과 프로젝트를 마친 이후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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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새싹 지휘자’ 유숭산이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 앞에 섰다. 6개월의 대장정을 이어온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정인 내부 시연회에서다. ‘바르도’를 연주한 유숭산 지휘자의 선곡엔 ‘수미쌍관’의 세계관이 담겼다. 지난 3월 단원들과의 첫 연주로 호흡한 곡이다. 유숭산은 “6개월 전과 프로젝트를 마친 이후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두 명의 멘토(원영석, 최수열), 4 명의 강사진(박범훈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 임헌정 전 서울대 교수, 작곡가 황호준 김택수)과 가진 워크숍의 과정, 총 7곡을 15회에 거쳐 연습해 온 경험은 ‘차세대 지휘자’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곡을 처음 지휘할 때만 해도 가야금과 같은 발현악기(손가락으로 퉁겨 소리를 내는 악기)의 타점을 어떻게 줘야 앙상블이 맞을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어요. 15번의 기회와 시간을 통해 ‘저만의 것’을 찾을 수 있었어요.” (유숭산)
신진 지휘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휘자 프로젝트’는 향후 수십년을 내다보며 출발한 기획이다.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과 ‘저변 확대’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됐기 때문이다.
채인영 국립국악관현악단 책임PD는 “악단의 입장에선 국악의 어법이나 호흡을 담으면서도 현대음악의 창작성이나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휘자를 찾기가 쉽지 않고, 지휘자들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프로 악단을 경험하고 설 수 있는 무대가 적었다”며 “토대를 만들고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에 선발된 이재훈, 정예지, 유숭산 [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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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된 세 지휘자는 면면이 다양하다. 정통 국악파인 이재훈(34), 서양음악(지휘)을 전공한 정예지(34), 서양음악과 국악을 고루 공부한 유숭산(31) 등이다. 지원 동기는 저마다 다르다. 이재훈은 “지휘자로서 관현악단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했고, 유숭산은 “국악 지휘를 하면서 경험에 목말라 있었다”고 말했다.
“학부 때 서양음악을 공부하다가 국악관현악을 듣고 세상에 이런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어요. 그 어떤 소리보다 흥미로워 국악을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나 적어 처음으로 후회한 적이 있어요. 기회가 적다는 절망감에서 오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절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유숭산)
6개월의 시간 동안 세 지휘자는 매달 꽉 채워진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았다. 1 대 1 멘토링, 국악관현악 작품 해석과 지휘법을 들을 수 있는 마스터클래스, 작곡가 워크숍, 창작음악 지휘 등 다양하다. 이 기간 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세 사람에게 완전한 ‘오픈 플랫폼’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위촉작의 총보도 모두 공개했다. 악단의 입장에선 큰 모험이었다고 한다. 그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위촉작의 이용기간을 독점적으로 설정, “악단의 정체성과 색깔을 만들어가는 작업”(채인영 책임PD)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채 책임PD는 “총보는 악단이 쌓아가고 있는 자산이자 고유한 색깔인 만큼 외부에 공개되거나 유출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이들을 내 식구로 품겠다는 의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과정에선 참가자들의 경쟁을 붙여 성적을 매기지 않았다. 채영인 책임PD는 “국악관현악을 지혜롭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서야 겠다는 필요성으로 시작한 만큼 참여자들을 경쟁 형태로 끌고 가지 않았다”며 “지휘자로서 필요한 역량과 갖추고 있는 역량을 고루 발견하고, 보완해 채워주는 방향성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의 마지막 일정인 내부 시연회에서의 정예지 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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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한 ‘지휘자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실전 경험’이었다. 국악관현악의 최정점에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악단의 특징과 악단에서의 지휘자의 역할을 확인했다.
이재훈은 “국악 연주자들은 서양음악 연주자와 달리 자기 자신을 한 명의 작곡가라고 생각한다”며 “스스로의 즉흥성을 가지고 음악을 하기 때문에 개성이 강하다. 지휘자는 이들을 설득하고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숭산 역시 “국악관현악단은 현재의 작곡가들이 창작곡을 연주하는 악단이다. 리허설 과정에서 악보의 미스나 해석에 있어 정확한 표기가 돼있지 않은 부분을 피드백하는 과정이 서양 악단과는 달라 조금 어색했다”며 “국악관현악에서의 지휘자는 확실한 자기 음악을 가지고 곡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국악을 접한 적이 없었던 정예지는 ‘국악의 세계’로 걸음마를 떼는 과정이었다. 그는 “국악이든 서양음악이든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건 다 같다고 생각해 지원했는데, 사실 장단이나 시김새, 악기 주법, 국악에서 필요로 하는 호흡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멘토링 수업은 국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유숭산은 “원영석 선생님에게 곡에 대한 해석 중심의 멘토링을 받았는데, 서양음악 베이스로 공부를 해오다 보니 놓치게 된 올바른 국악적 해석을 확실하게 짚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의 마지막 일정인 내부 시연회에서의 이재훈 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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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때로는 “형, 누나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가족처럼 품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유숭산은 떠올렸다. 정예지도 “따로 시간을 내서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며 “따뜻한 열정을 가진 단원 선생님들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이재훈은 “악단과 단원 선생님들이 정말 좋은 지휘자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인영 PD는 “단원들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열 줄 몰랐는데 모두가 놀랐다”며 “미래 세대 지휘자를 발굴하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컸다”고 말했다. “국악 레퍼토리부터 창작곡, 현대곡을 아울러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하고 젊은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다.
세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악단 안에 들어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배우게 됐”고 입을 모았다. 음악에 대한 공부는 물론 지휘자로 갖춰야 할 자세와 소양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경험이 컸다. 멘토로 함께 했던 최수열 지휘자는 일부러 단원들에게 “비협조적으로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원래 단원 선생님들이 너무 좋으신데, 어느 날 리허설에서의 엄청 싸했던 공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연주는 시작도 안 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웃음) 알고 보니 프로 악단에선 별별 일이 다 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신 거더라고요.” (유숭산)
이번 프로젝트 이후 세 사람은 지휘자이자 음악가로의 더 확고한 목표도 생겼다. 이재훈은 “음악과 장르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음악의 맛을 잘 끌어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유숭산은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고, 작곡가로도 이름을 걸고 국악계에 좋은 곡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정예지는 “지금처럼 해오던 대로 하면서, 지휘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성장할 세 사람은 프로젝트를 마치고 오는 10월부터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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