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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공무원이 '세모녀' 찾아라? "담당자 셋 뿐, 이미 뼈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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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2일 찾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 한 다가구주택. 전날(21일) 세 모녀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초인종 위에는 가스검침원의 연락달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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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복지 업무만 해도 하루가 다 가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수백명씩 위기 의심 가구 명단이 떨어져요. 중앙에선 현장 공무원들이 끝까지 찾으라고 쉽게 말하는데, 지금도 이미 뼈를 갈아 일하고 있어요. 대체 복지 전담 공무원 셋이 어떻게 끝까지 찾으라는 건가요?"

서울의 한 구청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인 A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적극적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이를 맡을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미 업무 과다로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고 말한다.

숨진 수원 세 모녀는 경기 화성시에 살다 수원시로 이사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화성시 기배동의 복지 전담 공무원은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도 1~2명에 불과한 다른 지자체보다 많은 편에 든다. 이들 복지 전담 공무원이 1만3000명에 달하는 기배동 주민의 복지를 책임진다. 노인ㆍ아동ㆍ장애인ㆍ저소득층 지원이 모두 이들 몫이다. 이런 일상 업무를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을 발굴해야 한다. 화성시 관계자는 “정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서 걸러진 위기 의심 주민 명단이 2개월에 한 번씩 지자체에 통보된다”라며 “화성시 전체로 보면 2개월에 4000~5000명, 기배동의 경우 300~400명의 주민 명단이 내려온다”라고 말했다. 이 명단을 토대로 전담 공무원이 위기 징후를 1차 판단하고, 2차로 현장에 나가서 확인하고 만약 정말 위기 가정으로 드러나면 공공ㆍ민간 복지 혜택을 연계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기배동의 전담 공무원 3명이 날마다 현장에만 나가서 찾아다닌다 해도 감당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사회보장정보시스템서 위기 의심 가구로 걸러지지 않았다. 시스템은 34가지의 위험 신호를 감지해서 위기 의심 가구를 선정하는데, 수원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를 16개월간 체납한 기록 한 가지만 잡혔다. 이런 사람은 전국적으로 540만명에 달하며 정부는 1년에 한 번 지자체에 이런 명단을 통보한다.

중앙일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차려진 24일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관계자가 빈소를 차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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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기배동 복지 전담 공무원이 수원 세 모녀의 주소지를 직접 찾아갔던건 화성시가 최근 복지 사각지대 발굴 사업에 나선 때문이라고 한다. 위험 신호가 하나라도 잡힌 이들에 대해서도 현장 조사를 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살지 않는 수원 세 모녀의 행방을 끝까지 찾지 못하고 종결 처리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라고 항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화성시는 매뉴얼에 정해진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위기 가구를 찾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정보시스템이 도입된 2015년 12월부터 올 7월까지 458만명의 위기 의심 대상자를 추려냈고, 지자체가 조사한 결과 188만명에게 공공ㆍ민간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고 지원했다”며 그간의 공을 설명한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복지전담공무원은 “명단만 수백~수천 명씩 뿌리면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건데 현장에선 죽어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한 분이라도 더 도와드리고 싶어서 애쓰지만 돌아오는 건 ‘왜 끝까지 못찾아냈느냐’는 손가락질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에스더ㆍ최모란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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