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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서민 물가고통 속 떼돈버는 기업들... 지구촌 ‘횡재세’ 논의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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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국의 에너지기업 BP의 로고 앞에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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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시민들의 삶이 날로 팍팍해지는 상황에서 높은 원자재 가격을 고리로 천문학적 이득을 얻은 기업들에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유가의 덕을 본 에너지 기업에 이어 곡물 시장 독점 기업들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에너지 기업 횡재세 확산


에너지 업종은 횡재세 도입이 거론되는 대표적인 분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다. 세계 1~5위 석유기업인 엑손모빌, 셰브론, 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토털에너지는 지난 2분기에만 약 600억달러(약 78조원)를 벌어들여 5개사 합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나 천연가스의 공급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원유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기업들의 고수익에 국제사회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석유 등의 화석연료는 환경 파괴로 이어지기에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오히려 전쟁으로 고수익을 올리게 됐기 때문이다. 고유가 부담이 대기업들보다 서민들에게 전가되는 문제도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최근 유엔본부 연설에서 “석유·가스 회사들이 극빈자들의 등 뒤에서 기록적인 이익을 챙기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며 “이런 초과 이익에 세금을 매겨 그 재원을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에너지 기업의 초과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은 확산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최근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 추가로 21%의 세금을 물리는 ‘대형 석유수익자 과세법’을 제안했으며, 아일랜드도 지난 22일 파스칼 도노호 재무장관이 에너지 회사의 초과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할 필요성을 거론했다. 영국은 이미 지난 5월 석유업체와 가스업체의 초과 이윤에 25%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00만유로(약 67억원) 이상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에 25%의 세금을 추가로 물렸다.

곡물 독점기업들도 도마에


횡재세 요구는 최근 곡물 유통 기업들로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며 이들 기업도 높은 실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식품 가격은 20% 이상 급등했다. 2014∼2016년 평균가격을 기준(100)으로 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40.9포인트를 기록했다. 곡물가격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급등해 지난 5월에는 173.5포인트까지 치솟기도 했다.

식량가격 급등에 힘입어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번지, 카길, 드레퓌시 등 소위 ‘ABCD’로 불리며 전 세계 곡물 거래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4대 곡물 기업들은 폭리를 취하고 있다. ADM은 올해 2분기 사상 최대 수익을 올렸으며, 카길은 최근 회계연도에 23%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번지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으나, 올 2분기 매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17% 늘어났다.

이 때문에 독점 기업들이 식량 위기를 틈타 과도한 마진을 올리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리비에 드 슈터 유엔 빈곤·인권특별보고관은 가디언에 “이들 기업의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얼마나 많은 곡물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적시에 재고를 공개하도록 강요할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영국에서는 횡재세 적용을 곡물 유통사들까지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의 NGO 네트워크인 ‘본드’ 관계자는 “대형 곡물 유통사들은 전쟁에 따른 공급 감소와 수요 증가를 분명히 이용하고 있다”며 “횡재세는 식품 시장의 균형을 회복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팜 측도 “투기가 식품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이들 회사의 초과 이익에 대한 횡재세를 요구했다.

정치권도 논의를 시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탈리 베넷 전 녹색당 대표는 “단기적인 조치로 식량 과점 기업들에 횡재세를 적용하자는 강력한 주장이 있다”라며 “이들 소수의 회사들은 식물 종자에서 슈퍼마켓 유통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비용 증가를 초래하는 인플레이션의 주요 기여자로 현재의 위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신중론’ 일관


한국에서도 최근 횡재세 논의가 활발해졌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내 정유사들이나 은행들이 막대한 실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들 회사가 물가 인상을 틈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최근 정유사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초과 이득’에 대해 50%에 해당하는 법인세를 물리는 한국판 횡재세 법안(법인세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대해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횡재세를 직접적으로 검토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수익이 많이 났다고 해서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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