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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尹도 당했다” 박근혜의 고춧가루, 반기문의 퇴주 음복... 온라인 이미지 조작[더블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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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온라인에서 반대 진영의 조롱 공세에 곤욕을 치렀다. 물가 안정을 위한 현장 점검을 나갔다가 ‘아오리’ 품종 사과를 집어들고 “이게 빨개지는 건가요”라고 물은 게 화근이었다.

사실 해당 발언은 장을 직접 본 경험이 적은 한국의 60대 남성 입에서 나온다한들 그다지 놀라울 게 없는 발언이었고, 실제로 아오리는 절반쯤 붉어진 상태의 상품도 시중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당시 전체 영상을 봐도 현장 관계자가 ‘빨갛게 익는다’는 취지로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반대 진영은 “빨개지는 건가”라는 자막이 붙은 한컷의 캡처 사진을 활용해 ‘딴 세상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일부 인터넷 매체가 ‘빨개지는 건가’를 제목으로 뽑으며 이를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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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의 한 농수산물매장에서 아오리 사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이 장면은 온라인에서 조롱의 대상이 됐지만, 실제로 아오리사과는 다 익으면 붉게 변한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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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특정 정치인의 앞뒤 자른 발언 단 한 문장, 사진 단 한 컷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바보 이미지 덧씌우기’는 2000년대 국내에 인터넷이 보급된 이래 국내 정치에서 수시로 벌어졌고, 상대방의 지지자를 이탈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해왔다.

◇朴, 고춧가루 몰라서 “고추로 맨든 가루”라 했을까

2016년 7월 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 울산광역시의 한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상점에 들러 고춧가루를 구경하면서 상인에게 “이게 다 국산 고춧가루(인가요)”라고 물었고, 상인은 “네, 다 국산 고춧가루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고추로 만든 가루…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라고 했다.

전후 대화를 살펴보면, 일단 박 대통령은 ‘고춧가루’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했고, ‘굉장히 귀하다’는 것은 ‘국산 고춧가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추로 만든 가루’ 앞에 ‘국산’이란 단어가 생략됐거나 들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한국에서만 60년을 산 사람이 고춧가루를 모른다는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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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7월 28일 울산 남구 신정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고춧가루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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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反)보수 진영에서는 “이게 다 국산 고춧가루(인가요)”라는 질문을 없앤 뒤, “고추로 만든 가루…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라는 부분만 잘라낸 영상이나 이미지를 뿌렸고, 많은 대중에 박 대통령을 ‘고춧가루도 모르는 한국인’으로 각인시켰다. 탄핵 국면에서 이 이미지는 박 대통령을 프랑스 혁명 당시의 마리 앙뜨와네트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런 영상과 사진, 기사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검색할 수 있다.

◇반기문이 퇴주잔을 마셔버렸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퇴주잔 음복 논란’도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던 2017년 1월, 보수 유력 후보로 꼽혔던 반 전 총장이 고향인 충북 음성군에서 부친 묘소에 참배를 했다. 이때 반 총장이 묘소에 꿇어앉은 자세로 옆에서 따라준 술을 받아 마시는 장면이 나왔는데, 반보수 진영에선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술 마시는 장면을 캡처해 ‘퇴주해야할 술을 마시다니, 전통 예법도 모른다’는 식의 조롱을 쏟아냈다. 마찬가지로 보수 진영에 적대적인 미디어가 가세했다.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반기문 음복’ ‘반기문 퇴주’는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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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7년 1월 14일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의 선친묘소를 찾아 참배한 뒤 음복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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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면 역시 전체를 다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반 전 총장은 성묘를 시작하며 처음 따라준 술잔을 건네받아 산소 주변에 뿌렸다. 퇴주를 한 것이다. 이어 다시 술잔을 받아 묘소에 올린 뒤 두 번 절을 올렸다. 이로써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고사례를 마쳤다. 반 전 총장이 마신 잔은 그 다음에 받은 잔이었다. 제주(祭主)가 제사를 마친 뒤 남은 음식을 먹는, 정상적인 ‘음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이 반 전 총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뒤였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다.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나치 독일의 국민계몽선전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역사에서 이런 식으로 선동된 국민들은 늘 재앙을 맞이했다.

[장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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