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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우유 남는다는데 가격 또 올려?"…폴란드 반값우유 박스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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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 판 뒤집는 소비자 ② ◆

매일경제

공급이 많은 상황에서도 매년 가격이 오르는 국산 우유 대신 저렴한 외국산 멸균 우유를 찾는 고객들이 늘면서 우유 역시 치즈처럼 수입산이 점령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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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우유 재고가 10만t씩 쌓인다는 데 왜 우유 가격은 계속 오르나요? 국산 우유 가격이 너무 비싸 더 이상 못 사겠습니다."

낙농가의 원유(原乳) '가격 인상'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값비싼 국산 우유를 외면하고 있다.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은 이미 외국산이 절반 이상이고 한국 낙농업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던 '흰 우유'마저 외국산 멸균우유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원유 가격 인상 이후 폴란드산 등 해외 멸균우유 수입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멸균우유 수입량은 올해 상반기 1만4675t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9326t보다 57%나 늘었다.

멸균우유란 초고온에서 미생물을 죽여 무균 포장한 것으로 일반 우유(살균 우유)와 영양분은 같으면서도 상온에서 10주간(최대 6개월) 보관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일반 우유(살균 우유)는 냉장 상태에서 10일 정도만 보관이 가능해 수입이 어려웠지만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이 길어 전 세계 어디서나 수입이 가능하다. '흰 우유' 해외직구 시장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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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유 가격이 인상되자 소비자들은 발 빠르게 세계에서 가장 싼 우유를 찾아냈다. 폴란드산 멸균우유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폴란드산 멸균우유 제품은 가격이 ℓ당 1300원(믈레코비타)에서 1500원(밀키스마) 수준이다. 반면 국산 우유는 ℓ당 2700원(서울우유)으로 폴란드산에 비해 2배 정도 가격이 높다.

폴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유가 싼 나라로 꼽힌다. 폴란드 무역투자대표부에 따르면 폴란드 현지 우유 평균 가격은 2021년 6월 기준 ℓ당 480원 수준이다.

유럽연합(EU) 평균인 540원보다도 낮고 낙농 선진국인 미국(507원)·뉴질랜드(540원)와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 폴란드산 우유는 현재 최고 13.5%의 관세가 붙지만 2026년부터는 무관세로 전환된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의 원유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는데 엔저 효과로 현재 세계 원유 가격 1위국은 한국"이라고 말했다.

'밀크플레이션'에 고통받는 소상공인들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수입산 멸균우유를 대량 구입하고 있다. 크림 파스타, 라테 등에 국산 우유 대신 수입산 멸균우유가 사용된다는 의미다.

프랜차이즈 업체 '쥬씨'는 커피나 일부 주스에 들어가는 우유를 국산 대신 수입산 멸균우유로 사용한다. 쥬씨 관계자는 "최근 물류비나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 제품 가격이 올랐지만 그래도 수입산 멸균우유가 국내산보다 30~40% 저렴하다"고 말했다.

또한 먹거리 원산지에 예민한 일반 소비자도 수입산과 국산 우유의 가격 차이가 배 이상 벌어지자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구매를 늘리고 있다. 폴란드산 멸균우유의 국내 흰 우유 시장점유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입 불가'로 여기던 '흰 우유' 시장을 수입산 멸균우유가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낙농업계와 우유업계의 보호 장막이 벗겨진 셈이다.

국산 우유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하지만 한국 우유산업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음에도 가격을 낮추기 힘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 지난해 국내 원유 생산량은 203만t이다. 이 중 193만t만 판매되고 나머지는 10만t은 소비되지 못해 장기 보관이 가능한 '분유'로 바뀌었다. 하지만 분유의 경우 수입산은 국산 가격의 절반에서 최대 3분의 1 수준이어서 원가 경쟁력이 없다. 우유업계 관계자는 "2020년 조사 자료를 보면 8개 유업체 회원사 데이터 기준으로 100원짜리 흰 우유를 팔면 5.7원의 적자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낙농업계는 수입산과 국내산은 생산원가 차이가 크다고 설명한다. 사료비도 급등한 상황이다. 사료비는 목장 운영비의 55%를 차지하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원유 가격은 ℓ당 21원 올랐지만, 유업체들은 우유 가격을 최대 200원까지 올렸다"며 "유업체들이 과도한 유통마진을 챙겨가는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유도 결국 수입산이 시장을 점령한 치즈의 길을 걸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 유가공 제품인 치즈의 경우 수입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한 상태다. 한 대형마트는 치즈 제품을 총 340종 취급하는데 이 중 280종(82%)이 수입산이고 국내산은 60종(18%)에 그친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치즈의 경우 국산은 이미 경쟁력이 없다. 치즈 1㎏을 생산하려면 우유 10㎏이 필요한데 원유 가격 차이로 실제 판매가의 경우 한국 치즈는 외국산에 비해 3배 정도 비싼 상황"이라며 "관세가 철폐되면 마시는 우유 역시 치즈처럼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명예교수는 "가격이 국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외국산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오면 국내 낙농산업은 파국을 피할 수 없다"며 "공급 측 입장만 반영되는 생산비 연동제를 폐지하고 소비자 수요를 반영할 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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