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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같은 교사였기에 더 컸던 ‘세월호 참사 부채감’ 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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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신안씻김굿 이수자 김정희 무녀

한겨레

세월호 참사 때 미술교사였던 김정희씨는 2015년부터 굿을 배워 신안씻김굿 이수자로서 4일 천도제를 주재한다. 신안씻김굿보존회 제공


“세월호 참사의 부채감을 매듭짓자는 의미가 있어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2호 신안씻김굿 이수자 김정희(59)씨는 3일 ‘세월호 천도제’를 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2014년 4·16 때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했는데, 대부분 희생자가 단원고의 학생과 교사였기 때문에 채무감을 더 크게 느꼈어요. 생죽음을 당한 영혼들의 억울한 한을 어떻게든 풀어 주고 싶었어요.”

신안씻김굿보존회가 4일 오후 5시부터 진도군 조도면 신전해수욕장 인근 바닷가에서 여는 ‘천도제’에서 그는 무녀로서 굿을 주재한다.

오늘 진도 조도면 ‘세월호 천도제’

교육문화연구회 솟터 회원들 함께

2019년 팽목항 ‘세월호 추모굿’ 참여

“교사 회원들이어서 방학 때 맞춰”


신안씻김굿 보유자 유점자 선생 이어

“억울한 망자들 넋 위로할 수 있어 감사”


한겨레

김정희(왼쪽)씨는 신안씻김굿 이수자로서 2019년 3월 예능보유자 유점자(오른쪽) 명인과 함께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굿 공연을 했다. 신안씻김굿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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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은 영혼을 위로하고 천도하기 위한 굿으로, 깨끗한 물로 망자의 넋을 씻겨 이승의 원한을 풀어주는 민간의례다. 이날 천도제는 2014년 그날 세월호 참사가 났던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으로 배를 타고 나가 망자들의 넋을 건지는 의례부터 시작한다. 김씨는 “12거리 정통 신안씻김굿 중 망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8거리만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굿판은 이어 바닷가에서 안당-초가망석(선부리)-오구굿-고풀이-씻김-길닦음-해원 순으로 진행된다.

굿판의 악사들도 교사들이다. 지난해 명예퇴직을 한 김씨를 비롯해 이동철·백금렬·신승태·박경도·이장열씨 등 교사 5명이 굿 장단을 맡는다. 이들은 교사 모임 교육문화연구회 솟터 회원들로 국악 연주와 소리 공부를 수십 년 해 온 ‘꾼’들이다. 참사 기일이 아닌 8월에 천도제를 올리게 된 것도 교사인 회원들의 방학에 맞춘 것이다.

역시 솟터 회원인 김씨가 굿을 배운 것은 2015년부터였다. 그는 “저와 국악모임을 같이하던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52호 신안씻김굿 예능보유자 유점자 선생님의 차남이 ‘가족 중 굿을 이을 사람이 없어 명맥이 끊길 것 같다’며 저에게 굿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25살 때 남편을 따라 비금도로 들어가 시어머니에게 처음 굿을 배운 유 명인은 올해 84살로 전남 일대에서 소문난 당골이던 고 김이삐씨의 굿을 잇고 있다.

솟터 회원들은 지난 2019년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굿’에도 참여했다. 유 명인이 나서 12거리로 진행된 굿은 다큐멘터리를 찍던 팀이 영상에 담기 위해 마련한 의례였다. 이들은 “다음엔 우리들끼리 교사·학생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는 굿을 동거차도에서 올리자”고 약속했다. 동거차도는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사고 당일 만사 제쳐놓고 구조에 나섰던 주민들의 삶터다. 하지만 이번에 동거차도에서 굿판을 여는 게 여의치 않아 장소를 사고 해역 인근 바닷가로 변경했다.

김씨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1990년대 고흥의 한 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소리에 끌려 국악에 입문했다. 육자배기와 흥타령 등 민요와 소리 눈대목을 익히다가 마미숙 선생한테 ‘춘향가’를 배운 그는 7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 굿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굿을 배우기 시작한 뒤 가족들한테도 말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망자의 넋을 씻겨 좋은 곳으로 가도록 도울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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