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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얼어붙은 주택시장에서 ‘깡통전세’는 세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안명숙의 차이나는 부동산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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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금리가 오르고 경기둔화 공포가 확산되면서 부동산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KB국민은행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조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13일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변동폭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면서 거래량도 급감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건수는 1000건 이하로 떨어졌고 경기도도 상반기 부동산 거래량이 14만751건으로, 2006년부터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작은 수치다.

주택시장의 분위기가 냉각되면서 또 다른 걱정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깡통전세’다. 깡통전세란 집값이 전셋값보다 낮거나 비슷해지면서 전세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기 어려워지는 위기의 상황을 빗대 만들어낸 말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를 넘는 주택이 3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하반기 들어 집값 하락속도가 빨라지면 이 같은 깡통전세 위험이 높아지는 주택 비율도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파트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대를 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수준이지만 충북, 경북, 전남 등 지방 아파트는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곳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 서울에서도 연립, 빌라 등 다세대나 오피스텔 등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미미해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신축 다세대나 다가구주택은 거래사례도 많지 않아 적정 매매가를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세보다 높은 전세금을 내고 입주하게 되어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전세계약 만기 때 집주인이 안전하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면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낮아져도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임대인들은 새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전 임차인에게 내주는 방법이 관행화되어 있다. 따라서 만기 때 집값이 전세가격보다 낮으면 새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게 되므로 만기가 지나도 전셋집을 빼지 못하게 된다. 만약 그 집이 경매처분될 경우 낙찰가격은 집값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순위라 하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일부 또는 상당부분 날릴 위험까지도 안게 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금반환보증사고 금액이 상반기 3400억원을 넘어서 같은 기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불안해진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이라도 가입하여 보증금을 지키려 문의하는 비율도 증가 중인 추세다. 그런데 최근 깡통전세 이슈를 보면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불편하다. 2년 전 전셋값이 오르고 매물을 찾지 못하자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대기표를 받고 가슴 졸여야 했던 세입자에게 과연 집값에 비해 전셋값 비중이 높다고 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을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새 아파트에도 입주하고,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다. 시장이 출렁거릴 때마다 깡통전세는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깡통전세는 언제든지 탁자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이슈이다. 전세금을 지킬 수 있도록 체크하고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세입자에게 있다면 주택시장에서 가격과 정상적인 거래 기능이 작동하도록 만들어주는 책임은 누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서 이번 깡통전세 이슈는 세입자들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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