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후원 무장세력이 이용하자
사우디·UAE 등 수니파 국가들 이스라엘과 ‘연합전선’ 구축
‘反이란’ 미국과도 이해관계 맞아
범중동 공동 방공망 시스템 추진
7월 15일 이란이 공개한 드론 발사 영상. 이란 해군이 전투함에서 드론을 발사하는 장면이 담겼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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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개발한 드론(무인기) 무기가 중동의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이란과 동맹국, 친(親)이란 무장단체들이 최근 드론을 이용한 공격을 크게 늘리고 있고, 이에 맞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빠르게 밀착하면서 지정학적 판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수니파 왕정 국가들이 손을 잡는 모습은 반(反)이란 동맹 구축이라는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서 미국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 순방 중이던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영 IRIB 방송을 통해 해군의 ‘드론 전단(戰團)’ 훈련 장면을 전격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다수의 드론이 이란의 잠수함에서 출격, 해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왔다. AFP 통신은 IRIB 방송을 인용해 “이란 해군이 ‘호마’와 ‘아라쉬’ ‘참로쉬’ ‘압바빌-4′ ‘바바르-5′ 등 여러 종류의 드론을 이용해 정찰과 수송, 자폭 공격 등의 임무 수행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란 해군은 “잠수함에서도 드론을 출격시킬 수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동 지역 드론 공격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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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드론 기술은 최근 중동 지역 안보를 흔드는 최대 위협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초기엔 중국산 드론을 베껴 만드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임무별로 최적화된 모델을 만들어 운용할 정도의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10여 년 전부터 드론을 핵심 비대칭 전력(상대방이 대응하기 힘든 무기)으로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의 기술 수준은 ‘드론 종주국’인 미국산 드론에는 아직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의 ‘글로벌 호크’는 항속거리가 2만3000㎞, 체공 시간 32시간 이상으로 세계 전역에서 정찰과 공격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카만22′ 등 이란의 일부 모델도 작전 반경이 3000㎞에 달한다. 숙적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모두 사정권이다.
이란의 드론은 정치적 측면에서 훨씬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시아파인 예멘 후티 반군과 이라크 내 친(親)이란 민병대, 시리아 정부군, 레바논 헤즈볼라 등의 손에 들어가 지역 정세 불안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무장 단체들은 드론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UAE, 요르단 등 주변 국가에 지속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이스 유전 공격을 시작으로, 지난 3년여간 벌어진 드론 테러는 확인된 것만 30여 건 이상이다.
이란 해군이 지난 15일 인도양에서 가진 훈련에서 전투함과 잠수함에서 드론을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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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드론의 공격을 받는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정치·군사와 정보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안보 공조에 나섰다. 전통적 적대 관계마저 뛰어넘은, 대(對)이란 ‘연합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은 이미 여러 무장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아 왔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요르단 등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이 국가들 간에 이례적인 ‘이면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국가들이 보유한 방공망과 대공 방어 무기는 전폭기나 미사일 등에 최적화되어 있어 작고 느린 드론 방어에는 애를 먹고 있다. NYT는 “(요르단 등) 다른 국가가 미처 발견 못 한 드론을 이스라엘이 해당국 상공으로 날아가 요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범(汎)중동 공동 방공망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다. 지난 2020년 ‘아브라함 조약’으로 해빙 무드를 맞은 이스라엘과 UAE를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도 참여시켜 이란과 친이란 무장 조직에 대한 ‘대공 포위망’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공동 방공망 시스템에는 드론을 잡는 데 최적화된 ‘안티 드론 기술’이 대거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을 정확히 구분해내는 짧은 파장의 ‘밀리미터파 X밴드 레이더’와 이스라엘의 최신 레이저 방공 무기 ‘아이언빔’ 기술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란의 드론은 중동을 넘어 유럽과 한반도 정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이란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드론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테헤란 남쪽에 위치한 카샨 비행장에서 러시아 대표단이 이란 드론의 시연을 참관하기도 했다. 북한도 최근 핵·미사일 개발·기술 교류 등을 매개로 이란과의 공생 관계를 드론 영역까지 확대하려 한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4~2017년 5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무인기 도발을 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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