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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 아이에게 네덜란드식 '생존 수영'을 가르쳤더니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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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아이도 '실전처럼' 옷 입고 신발 신고 그대로 입수

뉴스1

아이들과 부모들이 생존 수영 시험을 위해 평상복을 입은 채로 입수하고 있다. © 차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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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엄마도 떨려? 나도 진짜 떨려…우리 잘 할 수 있겠지?”

곧 만 9세 생일을 앞두고 있는 딸아이는 의젓하게 내 손을 잡아줬다. 이 순간 아이를 다독여야 할 사람은 엄마인 나 자신이지만 솔직히 나보다 머리 두 개는 족히 더 있는 세계 최장신에 덩치 또한 끝내주는 네덜란드 부모들 사이에서 곧 나에게 닥칠 시련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분명히 수영 시험을 보는 아이는 한 명일 텐데 온 가족이 출동을 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여러 무리의 가족들이 보인다. 꽃다발을 들고 여기저기에서 연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니 적막이 흐르고 평소 농담을 자주 건네던 선생님들조차 오늘은 심사위원이기 때문인지 엄숙한 표정이다.

아이 한 명과 부모 중 한 명은 반드시 같이 수영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수영 센터의 전통인데, 고작 수영 시험 하나로 참 유별나다 싶겠지만 정말 놀랄 부분은 어린이 수영 시험이 치러지는 방식이다.

모두 평상복 차림 그대로 물에 뛰어드는데, 정해진 복장의 규격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인 A와 그다음 단계인 B 시험을 볼 때는 상의는 팔을 완전히 감싸는 긴 팔 셔츠에 바지는 청바지나 도톰한 재질의 발목 뼈를 덮는 길이어야 하는데 레깅스나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 신발은 밖에서 일상적으로 신던 운동화나 구두 그대로를 신고 바로 입수하는 것이 시험의 첫 관문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C 레벨 시험은 놀라지 마시라. 장화와 우비를 단단히 챙겨 입고 물에 입수하는데 이는 비가 자주 오는 네덜란드의 지역적 상황을 고려하여 고안된 시험 과정으로 물속에서 수영복이 아닌 평상복과 신발 그대로를 입은 채로 그 무게를 견디며 옷을 벗는 방법과 수영과 잠수를 통해 물 위로 올라와 최종적으로 구조가 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살아있는 생존 스킬 그대로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어린이 생존 수영 수업은 물안경이나 수영 모자를 착용하지도 않는다.

하나, 둘, 셋…드디어 아이와 내 차례가 왔다.

물에 뛰어들 때는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뒤로 돌아 등이 물의 표면에 닿도록 입수한다.

아이와 함께 물에 뛰어든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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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난 2년동안 꾸준히 수영 수업을 받고 중간 단계의 B 디플로마를 받았다. © 차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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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선 생존 수영이 국·영·수 보다 중요하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 보다 낮은 땅이다. 끊임없이 물의 공격을 받아온 이 나라의 역사는 물과의 전쟁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러 차례 큰 홍수를 겪으며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던 네덜란드에서는 예쁜 자세나 멋진 속도로 수영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네덜란드는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 차원의 생존 수영 수업을 체계화하고 시험 과정 및 교사 양성 과정의 틀을 1980년부터 꾸준히 개발해왔다.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만 4세가 되면 대부분 생존 수영 수업을 시작한다. 주당 1회 30분-45분 정도의 수업으로 시작하여 연령이 높아지면 수업 시간 및 강도는 점점 늘어난다. 네덜란드에는 국, 영, 수를 가르치는 학원은 없지만 수영을 가르치는 곳은 동네마다 많다. 코로나19감염증으로 나라 전체가 봉쇄를 겪을 때에도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은 어린이 생존 수영 수업이었고, 봉쇄가 풀리자마자 제일 먼저 수업을 재개한 곳도 수영 수업이었다. 잘 가르친다고 입소문이 난 수영 센터는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하고, 기본적인 단계인 A 레벨 시험 통과를 위해 1년에서 2년간의 수영 수업이 필수적이다.

네덜란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은 생존 스킬을 가르치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수영 수업은 놓쳐서는 안되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며 적기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

이미 1970년부터 네덜란드의 많은 학교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것을 정규 수업에 포함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영 교육체계에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1984년부터 체계화된 국가 수영 안전 협회(Nationale Raad Zwemveiligheid)는 수영 수업의 국가 기준을 세우고 교사 양성 교육, 수영장의 안전시설 점검 및 평가 도구, 수영 시험의 단계를 나누는 디플로마 과정을 전문적으로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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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수영 안전 협회 마리스카씨는 지난 30년 이상 네덜란드 생존 수영 교육 품질을 평가하고 개발했으며 선진적인 네덜란드 수영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차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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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생존 수영을 왜 교실에 앉아서 가르치죠?"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가 맞죠? 교실에 앉아서 VR(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생존 수영을 배우는 것이 실제 아이들이 물에 빠졌을 때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까요?”

네덜란드 국가 수영 안전협회의 마리스카 홀(Mariska Hol) 씨는 뉴스 1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어린이 생존 수영 수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마리스카씨는 “국가 수영 안전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엄격하게 교육 품질이 규격화된 생존 수영 수업을 배운 뒤로 익사사고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 내에서 어린이 익사 사고의 대부분은 생존 수영 수업을 접하지 못했던 이민자나 난민 또는 수영 수업을 받기 어려웠던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으며, 네덜란드에서 생존 수영을 배운 만 10세 이하의 어린이 익사사고는 거의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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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100,000명당 익사율이 생존수영수업이 체계화된 1980년을 기점으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10세 이하 어린이 익사율은 1950년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있다. 자료 제공 NRZ


네덜란드의 어린이 생존 수영 수업은 물에 빠졌을 때 그 위급한 상황을 바탕으로 가르친다. 따라서 얼만큼 팔의 각도를 만들어야 하고 어느 속도로 수영을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물 속에서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는 생존 능력과 물안경, 수영모자를 비롯하여 어떠한 보조장치도 없이 눈을 뜨고 물 속에서 잠수하여 탈출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어린이 생존 수영 수업 교사가 되는 것 또한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보통 9개월 이상의 이론 수업을 받고 3개월간 전문 교사 실습을 거치는데, 꾸준한 교사 관리 및 재교육을 통해 교육 품질을 보증하고 있으며 동네의 아무리 작은 수영 센터라 할지라도 수질, 안전시설, 위급 상황 대처 능력 등을 철저하게 평가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경우에만 어린이 수영 수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믿고 자녀들을 보낼 수 있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물놀이 철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교육부와 일선 학교 및 수영 센터들도 이런 네덜란드의 선진적인 생존 수영 수업을 도입하여 보다 실용적인 생존 스킬을 가르쳐 보면 어떨까? 매년 뉴스를 통해 안타까운 어린 생명들의 익사 사고를 줄여볼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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