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은 헌법적 권리 아냐”
공화당 ‘대법원 보수화 기획’ 결과
상당수 주에서 임신중지권 부정될 듯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공식 폐기 결정한 가운데 대법원 청사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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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가까이 유지된 임신중지권 보장 판례를 파기했다.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헌법적 보호가 사라지면서 여성 인권 후퇴와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연방대법원은 24일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 주법에 대한 심리 결과, 1973년 이래 유지돼온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폐기하기로 했다. ‘로 앤 웨이드’ 판례는 “임신중지 행위 처벌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 침해”라며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중요한 판결로, 이를 통해 그동안 22~24주까지는 임신중지권이 보장됐다.
대법관 9명 중 5명이 다수의견을 형성해 이번 판단을 내렸다. 다수의견을 집필한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은 “‘로 앤 웨이드’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며 “그 추론은 특별히 빈약하고, 그 결정은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또 “이 판결은 임신중지 문제를 국가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논란을 악화하고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1992년 이 판례를 뒷받침한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례도 폐기했다.
기존 판례를 폐기하는 다수의견의 핵심 논리는 임신중지는 헌법과 관련이 없으므로 애초부터 대법원이 심사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헌법은 임신중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임신중지권은 헌법 조항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임신중지권’이 헌법 조문에 들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헌법상 권리인 사생활의 자유 차원으로 해석한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미국 전체 차원에서 임신중지권은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임신중지에 대한 입법은 각 주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미 미국 남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공화당이 주정부를 장악한 주들은 ‘로 앤 웨이드’ 판례가 유효한 상황에서도 짧게는 임신 6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등 임신중지권을 노골적으로 부정해왔다. 일부 주들은 임신부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면 어떤 경우라도 임신중지를 못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까지 파기한 터라,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가량이 임신중지권을 부정하는 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진보 성향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공동 집필한 소수의견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이 법원과, 나아가 오늘 기본적인 헌법의 보호를 상실한 수백만 미국 여성들을 향한 슬픔을 느끼며 우리는 다수의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 5명의 기존 판례 폐기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다만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6 대 3으로 갈린 판단에서 다수의견 편에 섰다.
24일 ‘로 앤 웨이드’ 판례 파기 소식을 접한 여성들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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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엔>(CNN)은 이번 판결은 수십년 만에 가장 파장이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지난달 초 <폴리티코>가 이번 판결 초안을 입수해 공개하자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워싱턴 대법원 청사 앞에서는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이 헌법적 권리라는 점을 부인하면 입법으로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 사안을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공화당 쪽의 ‘대법원 장악’ 시나리오의 ‘성공’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 쪽은 보수적 의제에 전적으로 충성하는 대법관들을 기용하면서 대법원의 확실한 보수화를 추구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임명된 브렛 캐버노 등 대법관 3명은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을 지명할 때 임신중지권 판례에 관한 입장을 평가 잣대로 삼았다.
대법원은 전날에는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뉴욕주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것도 ‘총기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편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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