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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자영업자도 소비자도 라이더도...‘배달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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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관악구에서 파스타를 주력으로 배달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던 김명환 씨(가명)는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연초 배달 플랫폼 수수료 인상 이후 가뜩이나 적자가 계속되던 가운데, 최근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배달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더 이상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김 씨는 “최근 배달콜이 급격히 줄었는데도 높은 배달비와 수수료는 여전히 그대로다.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른 손절을 선택했다. 버텨볼까 고민도 했지만 지인으로부터 괜찮은 상권에 싸게 나온 공실 매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업종 전환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2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도형 씨(가명)는 최근 압구정에 위치한 주점 서빙 알바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됐다. 지난 2년간 라이더로 월평균 300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지만 최근 배달콜이 뚝 끊기면서 이직(?)을 결심했다. 배달용 오토바이는 중고시장에 내놨다. 이 씨는 “배달콜이 줄다 보니 수입이 반의 반 토막 수준으로 내려갔다. 단순히 음식을 옮기기만 하는 배달보다는 뭐라도 하나 더 배울 수 있는 음식점 직원이 장기적으로 봐도 더 낫다고 생각했다. 주변 라이더를 봐도 음식점 알바를 비롯해 대리기사, 배송기사로 옮기는 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한 배달 시장이 최근 위기를 맞이한 모습이다. 본격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요즘, 자영업자·소비자·라이더 등 주요 플레이어가 업계를 모두 빠져나가고 있는 추세다. 단순히 엔데믹에 따른 위기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급격한 성장이 오히려 ‘독’이 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수료와 배달비 부담에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라이더도 이탈 중이다. 마케팅 출혈 경쟁을 이어가던 배달 플랫폼도 성장 한계에 봉착했다. ‘30분 내 전국 모든 음식 배달’이라는 슬로건을 기치로 내건 배달 시장이 애초에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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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특수’를 누렸던 배달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음식을 배달 중인 배달 라이더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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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앱 이용 급감…라이더 이탈 본격화

▷쿠팡이츠 月 사용자, 연초 대비 150만명↓

배달 시장 위기 국면은 데이터에서부터 확연히 나타난다.

배달 앱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쉽다. 최근 들어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이른바 ‘배달 빅3’ 앱 사용자 수가 모두 급감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4월 배달의민족 월간 순사용자(MAU) 수는 2080만3000명. 직전 달인 3월(2109만7000명) 대비 10만명 이상 줄어든 수치다. 다른 배달 앱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요기요는 같은 기간 883만7000명에서 795만4000명으로 약 90만명, 쿠팡이츠 역시 568만명에서 506만5000명까지 줄었다.

올해 1월과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단건 배달’로 빠르게 덩치를 키운 쿠팡이츠가 유독 그렇다. 쿠팡이츠 1월 MAU는 658만2000명이었다. 4월(506만5000명)과 비교하면 한 달에 한 번도 쿠팡이츠 앱을 켜보지 않은 사람이 150만명 넘게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당 기간 MAU 감소율은 23%로 배달의민족(-2.6%), 요기요(-10.9%)를 훌쩍 넘어선다.

서울·수도권에서 공유주방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배달 전문 음식점 배달 건수가 평균 20% 가까이 떨어진 것 같다. 프랜차이즈처럼 이름 있는 브랜드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배달 전문 식당에서, 치킨·피자같이 코로나 이전에도 주로 배달로 시켜 먹던 음식보다 한식이나 양식처럼 최근 배달이 활성화된 업종 중심으로 감소폭이 큰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배달 수요가 줄자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달 라이더’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중고 오토바이 매물이 쏟아진다. 국내 최대 바이크 커뮤니티인 ‘바튜매(바이크튜닝매니아)’에서 배달 라이더가 주로 사용하는 ‘125㏄ 미만 중고 오토바이’ 판매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지난 5월 1일부터 26일까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400건이 넘는 게시글이 등록됐다. 올해 3월 한 달간 올라온 판매 게시글은 2500건 수준. 3월보다 분석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5월 게시글이 8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최근 배달 현장에서는 ‘콜사(Call+死)’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배달 주문(콜) 횟수가 줄어들다 못해 거의 사라진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밀려드는 배달콜로 플랫폼마다 서로 웃돈을 얹어가며 ‘라이더 쟁탈전’을 벌였던 한두 해 전과 비교하면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역전된 모습이다.

서울 중구에서 수제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규식 씨(가명)는 “예전에는 사람을 뽑을래도 뽑을 수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면접 지원자가 많이 늘었다. 물어보면 하나같이 라이더를 하던 친구들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안 그래도 운영 시간과 손님이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탈배달’ 현상이 반갑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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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급감한 원인은?

▷너무 비싼 수수료와 배달비 ‘피로감’

배달 앱 이용자 수가 급감하자 업계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업계에서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계절’이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외출과 외식이 늘었고 그에 비례해 배달 수요는 줄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도 날씨가 따듯한 3~5월은 전형적인 ‘배달 비수기’로 분류됐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게 배달 플랫폼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하지만 단순히 계절적 요인 탓이라기에는 앱 사용자 수 감소폭이 너무 크다. 지난해에는 양상이 전혀 달랐다. 날이 추운 1~2월보다 비수기라는 3~5월 평균 MAU가 오히려 많았다. 배달의민족은 1750만명에서 1932만명으로, 요기요는 740만명에서 778만명으로, 쿠팡이츠는 378만명에서 494만명으로 30% 넘게 늘어난 바 있다.

‘엔데믹 초기 충격’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동안 억눌려졌던 외식 수요가 폭발하면서 배달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5~6월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배달 수요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다.

하지만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생각하는 원인은 업계가 내놓은 해석과 다르다. 폭등한 배달 플랫폼 수수료와 배달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은 각각 올 초 배달비와 중개 수수료를 ‘사실상 인상’했다. 기존 ‘중개 수수료 1000원+배달비 5000원’이었던 수수료 체계를 배달의민족은 ‘음식값 6.8%+배달비 6000원(배민1 일반형 요금제 기준)’, 쿠팡이츠는 ‘음식값 7.5%+배달비 6000원(절약형 기준)’으로 바꿨다. 수수료가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뀌면서, 점주 입장에서는 음식값이 비싸지면 비싸질수록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 서울에서 배달 전문 음식점을 6년째 운영 중인 윤태승 상봉냉면칼국수 대표는 “보통 음식값에서 식재료비가 3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배달 관련 비용이 30%~40%까지 늘었다. 나머지 30%에서 인건비와 임대료 등 기타 비용을 다 해결해야 하는데 정말 힘든 상황이다. 순이익률을 따지면 1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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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주도 손님도 ‘탈배달’

▷포장 늘고 ‘배달 앱 패싱’ 양상도

높은 수수료와 배달비를 견디지 못한 음식점 점주들과 소비자 사이에서는 ‘탈배달 앱’ 움직임도 감지된다. 점주들은 “배달 앱 수수료가 대폭 인상됐습니다. 배달이 가능한 지역에서 주문할 앱이 아닌 일반 전화로 음식을 시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배달 앱 소개글에 공공연히 띄워놓는다. 소비자도 배달 앱을 이용하는 대신 포장 주문을 시키거나 직접 가게에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 사례도 많다. 서울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지훈 씨(가명)는 최근 손님에게서 독특한 전화를 받았다. 손님은 “배민1으로 주문하려다가 직접 전화를 드렸다. 치킨을 3만원어치 시키려는데 전화로 주문하면 3000~4000원 정도 깎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한 김 씨는 “가능하다. 하지만 기본 배달비 3000원은 부담하셔야 된다”고 답했고, 손님 역시 이를 수락하면서 두 사람 간의 ‘딜’이 성사됐다.

배민1을 통해서라면 음식값 3만원에 배달료 3000원을 더한 총 3만3000원이 결제 금액이었겠지만, 이 ‘딜’을 통해 손님은 2만9000원만 지불했다. 김 씨 역시 중개 수수료 3000원가량을 아낄 수 있었다. 플랫폼을 회피해 직거래를 성사시켜,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 ‘윈윈’한 셈. 김 씨가 사연을 공유한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광고는 ‘배민’이 해주고 거래는 직거래로 한 것 아닌가” “수수료 빼는 통쾌한 전략”이라는 ‘동료 사장님’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 플랫폼들은 정액제를 유지하다 배달 수요가 가장 고점에 있던 때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체계를 개편했다. 그러나 개편된 높은 배달료는 엔데믹이 찾아오면서 소비자 수요를 더욱 줄이는 원인이 됐다. 플랫폼이 유리하던 상황을 활용한 일종의 ‘갑질’이었지만 갑이던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시적 위기? 배달 시장 전망은

▷배달 전문점은 ‘업종 전환’ 고심

배달 시장 위기는 과연 업계 말대로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장기적으로 시장이 위축되는 ‘피크아웃’이 시작된 걸까. 의견이 갈리지만 “지난 2~3년과 같은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먼저 당장 조정이 어려운 배달비와 중개 수수료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간 배달비가 급격히 오른 이유는 배달 수요 급증과 라이더 부족 사태다. 같은 논리라면 배달콜이 줄어든 현재, 배달비도 같이 떨어져야 맞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를 땐 쉬웠지만 떨어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배달 플랫폼 기업의 ‘적자’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부터 줄곧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2019년 364억원이던 영업손실은 2020년 112억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역대급 배달 실적’에도 불구하고 757억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쿠팡이츠에 적극 투자를 하고 있는 쿠팡도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달비로 6000원이 책정돼 있지만 그동안 라이더에게 실제 지급해온 금액은 그것보다 더 많았다. 장거리 배달에 붙는 거리 할증이나 악천후 등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추가 배달 비용을 회사가 감당해왔기 때문이다. 서버 관리비 등 제반 비용도 많다. 기업인 만큼 적자를 보면서는 서비스를 유지할 수 없어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라이더들이 자체적으로 배달비를 인하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류비, 인건비, 오토바이 보험료가 모두 올랐다. 지금보다 배달 수요가 줄어든다고 해도 배달비를 지금 수준 밑으로 떨어뜨리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배달 플랫폼 기업의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장이 성장하던 기간 동안 단행했던 막대한 투자, 민간·공공을 비롯한 다수 경쟁자 등장, 수요 축소가 모두 겹치면서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배달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줄면 배달 시장이 플랫폼 우위에서 점주 우위로 재편될 수 있다. 이제는 플랫폼이 점주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면서 “그동안의 호황을 믿고 과잉 투자했던 기업은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재무 개선, 또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생존 가능한 업체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탈배달 시대’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자영업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배달에 의존하던 매장이라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오프라인 매장 중심 마케팅도 다시 꺼내들어야 할 때다. 이은희 교수는 “매장이 위치한 상권을 잘 분석해 전략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배달 수요는 줄고 수수료, 배달료는 높은 상황에서도 배달을 유지해야 할지, 내방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오프라인 마케팅에 힘을 줄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우후죽순 생겼던 배달 전문점 역시 업종 전환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강성민 대한가맹거래사협회장은 “배달만 전문으로 하던 매장은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이 있는 가을철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다면 아예 지금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하는 것이 낫다. 홀을 운영하지 않는 매장은 좋지 않은 입지에 있고 인테리어 등에 돈이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투자금도 적은 편이다. 손을 털고 나오기도 비교적 쉽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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