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권양숙 여사,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을 마친 후 참배를 위해 묘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권교체 뒤 처음 맞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추도식은 더불어민주당의 6·1 지방선거 출정식을 방불케했다.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13주기 추도식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이해찬 전 대표 등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코로나19로 70여 명만 참석했던 2020~2021년과 달리, 이날 추도식엔 야권 지지자 1만여 명이 모여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물결을 이뤘다.
이날 추도식엔 김동연(경기)·변성완(부산)·이용섭(광주)·박남춘(인천)·양문석(경남) 등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선거운동 일정을 쪼개 참석했다. 민주당 인사들을 향해선 환호성이 쏟아졌지만,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들에겐 일부 추모객이 고성과 야유를 쏟아냈다.
이날 추도식의 주제는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였다. 노무현재단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노 대통령이 바란 소통과 통합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추도사에선 “민주당을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을 모아달라”는 지지 호소가 포함될 정도로 야권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文, 5년 만의 참석…한덕수, 보수 정부 첫 국무총리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이 엄수된 23일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권양숙 여사가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날 오전 10시만 해도 봉하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문 전 대통령이 5년 만에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찾으면서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 문 전 대통령은 환호하는 시민들과 악수를 한 뒤, 곧바로 오는 8월 개관 예정인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을 찾았다. 방명록엔 “깨어있는 시민들이 당신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그가 봉하마을을 찾은 건 취임 직후였던 2017년 5월 추도식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겠다”고 밝힌 뒤 5년 만이다.
문 전 대통령 부부는 이날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가 준비한 도시락으로 이 위원장과 이 전 민주당 대표,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민주당 전·현직 지도부와 함께 오찬을 한 뒤 오후 2시 추도식에 참석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한 민주당의 다른 지도부 인사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선거 얘기는 특별히 없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과 함께 앉았던 이 위원장도 “(문 전 대통령과) 여러 말씀을 나눴는데, 공개할 만한 그런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말씀은 없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 직후 노 전 대통령 묘역 너럭바위에 헌화한 뒤 눈시울이 붉게 물든 채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현장을 떠났다. 이날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파란색 풍선을 들고 모인 지지자들은 문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을 향해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외쳤고, 이에 문 전 대통령은 한 차례 창문을 내려 손짓으로 화답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추도식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차례 조우했으나, 따로 대화나 악수를 나누진 않았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3월 9일 같은 날 각각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된 인연이 있다.
이날 취임한 한 총리는 첫 외부일정으로 추도식을 찾았다. 보수 정부에서 현직 국무총리가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이진복 정무수석 등 정부 핵심 인사들, 그리고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관계자 10여명도 함께했다.
━
보수진영에 날 세운 추도사…이준석·박지현엔 고성도 쏟아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처럼 여야가 함께 한 행사였으나, 이날 추도사엔 보수 진영을 향한 뼈 있는 말이 가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주제에 무슨 균형자냐, 한·미동맹이나 잘 챙기라’는 보수진영의 비난과 비아냥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됐고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또 “최근 대선 패배 후에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뉴스도 보기 싫다는 분들도 많다”고 말한 뒤, “그럴수록 더 각성해서 민주당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을 모아달라”고도 했다. 이날 노무현재단이 행사 중간 상영한 노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 영상에도 “의미 있는 좌절은 단지 좌절이 아니라 더 큰 진보를 위한 소중한 축적이 되는 것이다” 같은 ‘정치적 좌절 극복’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추도사를 낭독한 정세균 전 총리는 “노 대통령께서는 늘 사즉생의 자세로 사셨다”며 “그런 점에서 그를 향한 진정한 추모의 시작은 노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이 다시 깨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이어 “그의 못다 이룬 꿈이 이 자리에 함께한 시민 여러분의 힘으로 완성되길 진정으로 고대한다”고 말했고, 참석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 참석, 추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추모객과 유튜버들이 이 대표의 입장을 가로막으면서 실랑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편, 이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추도식장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선, 그의 입장을 막으려는 일부 추모객, 유튜버 등과 경호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추모객들은 이 대표를 막아서며 “꺼져라” “돌아가라”라고 소리쳤고, 이에 이 대표는 “왜 밀어요”라고 반복해 말하며 간신히 입장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일부 추모객과 경호원들은 이후에도 말다툼을 벌였다.
추모객들 가운데엔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박 위원장이 행사장에 들어올 땐 한 남성이 “물러나라”라고 항의했고, 박 위원장이 퇴장할 때는 “제대로 해라” “최강욱 의원을 지켜라”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박 위원장이 당내 온라인 회의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강욱 의원을 향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해석된다.
김해=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