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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서 절망이 된 두 좌파 대통령 [민원정의 중남미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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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교수가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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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왼쪽)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로이터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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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는 1969년 페루 푸냐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부가 하고 싶어 청소년 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일하며 돈을 벌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2017년 교사 파업의 주역으로 정치적 명성을 얻기 시작해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마르크스주의 페루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다. 농촌과 외딴 지역의 막판 몰아주기 표심 덕에 그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를 꺾고 페루 최초의 인디오 출신 대통령이 되었다.

가브리엘 보리치는 1986년 칠레 남부 마가야네스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칠레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중 2011~13년 대학 학생회 회장으로 당시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2019년 칠레의 대규모 소요 사태 동안에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앞장섰다. 이를 발판으로 민주주의 사회주의자, 공산당 및 기타 소규모 정치 운동의 정당 연합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2021년 칠레에서 가장 젊은 대통령이 되었다.

두 대통령 모두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은 약 50%의 국민을 품을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카스티요는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은 없다", 보리치는 "모든 칠레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걸고 대통령궁에 입성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 65%는 카스티요가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페루의 향후 5년은 무질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초적인 경제 용어는 고사하고 국정 운영에 대해서도 무지한 대통령에게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중남미에 부활한 핑크타이드의 상징으로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보리치의 인기는 급하락했다. 학생 지도자 시절 중남미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라는 허울 속 칠레의 불평등 구조를 뒤흔들며 항의 시위를 주도하고, 대통령 후보 시절 칠레의 정치 지형에 대변혁을 가져오겠노라 다짐했던 보리치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기대했던 변화는커녕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무기력한 새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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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의 의회와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지난달 9일 페루 리마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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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요와 보리치는 불과 몇 달 사이 중남미 좌파의 희망에서 재앙이 되었다. 4월 인플레이션은 8.0%(페루), 8.3%(칠레), 지니계수는 41.5(페루), 44.4(칠레)를 기록했다. 정치·경제·교육·보건, 근본 원인에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하는 사이, 카스티요는 두 번의 탄핵 위기를 넘겼다. 칠레는 중남미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에서 가장 치안이 위험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카스티요는 6개월 동안 네 번이나 내각을 개편했다. 무리한 국유화에 대항하는 광산회사들의 항의 시위와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자진 하야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헌법 개정, 북쪽에서는 이웃 나라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과 지역 주민 간 갈등, 남쪽에서는 마푸체 인디오 거주 지역 갈등, 트럭 기사들의 시위로 막힌 고속도로, 늘어나는 범죄로 보리치는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원자재 수출과 관광 등 대외 의존적 경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정부의 능력 부족과 위기관리의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1세기 중남미의 '진보적' 핑크타이드는 반제국주의가 만연했던 중남미 좌파의 영광스런 시절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맨살이 드러난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가 고름을 짜내는 과정일 뿐이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다.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아름다운 공약은 허공을 맴돌고 두 사회주의 정치 초년병은 불안한 개혁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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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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