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연설까지 참고… 5·18 추모 공들인 尹
KTX서 與호남의원들과 식사, 기차칸 돌면서 참석자들과 인사
‘민주의 문’ 지나 200m 걸어 입장… 보수 정권 대통령으로는 처음
이준석 등 與 100여명 광주 집결… 정치권 “호남 끌어안기 결실맺어”
광주 도착한 국민의힘 의원들 - 국민의힘 의원들이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송정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새 정부 장관들, 대통령실 참모진, 국민의힘 의원 등 당정 인사 100여 명은 이날 서울에서 출발하는 KTX 특별열차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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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7시 30분쯤 서울역에서 광주로 향하는 KTX 특별열차를 탔다. 열차에 함께 탄 당정(黨政) 인사만 100명이 넘었고, 국민의힘에서 원외 인사인 이준석 대표와 함께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의원 100여 명이 기념식에 집결했다. 코로나 격리자를 제외하면 거의 전원이 참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차 칸마다 돌며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덕담을 건넸다. 그는 “국민 통합의 길에 당이 함께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취임 후 호남만 20회 방문하며 여당의 ‘서진(西進) 정책(호남 끌어안기)’을 주도한 이 대표에게는 “수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정운천 의원(비례) 등 국민의힘 호남 동행단 소속 의원 7명과는 열차에서 샌드위치 아침을 들고 “앞으로 민주화운동이 더 인정받고, 진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힘을 합쳐보자”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9시 50분쯤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 도착했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윤 대통령을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 박해숙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 등 5월 단체 관계자들이 맞았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라고 썼다. 행사 시작에 앞서 가진 비공개 환담에서는 ‘매년 와줄 수 있냐’는 고(故) 전재수 열사 유족의 질문을 받고 “매년 참석하겠다” “5·18 정신을 잘 이어받아 성실하게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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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 시작 3분 전 ‘민주의 문’이라고 부르는 묘지 입구부터 추모탑까지 약 200m를 걸어서 입장했다. 윤 대통령 양옆으로 유공자·유족, 광주 지역 학생 대표 등이 나란히 섰고, 행렬이 추모탑으로 향하자 장내에선 가수 최백호씨가 노래한 ‘보고 싶은 얼굴’이 흘러나왔다. 기념식 당일 대통령이 민주의 문으로 입장한 것은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한 37주년 기념식 이후 5년 만으로,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6분여짜리 기념사에서 ‘5·18 정신’ 계승을 다짐하며 국민 통합 메시지를 부각했다. 취임사에서 35차례나 말한 ‘자유’를 이날 기념사에서도 12차례 썼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를 7차례 직접 퇴고(推敲)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고 했는데, 이는 원고에 없는 즉흥적 발언이었다. 대통령실은 “1963년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며 자유 시민 간 연대를 강조한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베를린 장벽 연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쓰고 고치고… 尹, 기념사 7번 퇴고 -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5·18 기념사를 다듬고 있다(위). 윤 대통령은 기념사 원고를 7차례 직접 퇴고했다. 아래 사진은 기념사 원고. /대통령실 |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식순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齊唱)이었다. 이 노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원하는 사람만 부르도록 하는 합창(合唱)으로 하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후 참석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제창 형식으로 바뀌었다. 의전상 합창은 무대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참석자는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형식이다. 제창은 애국가처럼 참석자들이 모두 노래한다. 반주 시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윤 대통령은 양옆에 앉은 황일봉·박해숙 회장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야당 인사들은 주먹을 쥔 채로 팔을 들어 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날 제창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5년 전 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이 눈시울을 붉히고, 유가족과 포옹하는 모습 등이 화제가 됐다. 이날 행사는 1시간 내내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대통령부터 당대표까지 여당·정부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것을 두고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무릎 사과’에서 시작된 보수 정당의 호남 끌어안기가 의미 있는 결실을 보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감개무량하다”며 “저희의 변화가 절대 퇴행하지 않는 불가역적 변화였으면 한다”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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