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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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코인 루나 가치가 99.99% 급락한 가운데, 루나와 자매 코인 테라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테라폼랩스가 보유해온 비트코인 35억 달러(약 4조5000억원)어치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폰지 사기' 논란 속 투자자의 피해가 커지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월가의 대표적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에 빗댄 목소리까지 등장했다.
블룸버그는 15일(현지시간) “블록체인 분석업체 엘립틱에 따르면 35억 달러의 비트코인이 들어있던 루나 재단의 전자지갑이 지난 10일 비워졌다”며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와 바이낸스 계좌로 각각 이체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거래소 계좌에서 비트코인을 팔았는지, 다른 지갑으로 옮겼는지 추적할 수 없다”며 “이들이 비트코인을 어디에 썼는지는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다.
테라폼랩스가 '테라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루나 재단’(LFG·루나 파운데이션 가드)은 비트코인 8만394개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한 전자지갑이다. 시가로 약 35억 달러(4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지난 6일 15억 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3만7863개를 추가 매입하며 몸집을 불렸다.
비트코인 매입 자금은 대부분 테라와 루나로 모은 투자금으로 마련했다. 권 대표는 “3분기 말까지 100억 달러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겠다”고 말했다. 테라폼랩스가 비트코인을 사들인 건 자체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의 가치 방어 수단으로 비축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테라의 가치는 1달러에 고정돼 있다.
지난 8일 테라의 가격이 0.98달러까지 떨어지면서 1달러 고정이 깨지자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루나 재단이 비트코인을 팔아 테라의 가격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암호화폐 투자 커뮤니티에서 “구조대가 곧 올 거다. 기다리자”는 의견이 나온 이유다. 루나 재단의 비트코인 대량 매도를 예상하고, 일부 투자자가 비트코인을 처분하며 3만 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루나 재단은 테라의 가격을 1달러로 돌려놓지 못했다. 루나 재단이 보유한 비트코인도 행방불명됐다. 권 대표는 지난 14일 트위터에서 “테라폼랩스는 테라가 1달러 아래로 내려간 뒤 루나 재단이 비트코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리하고 있다”며 “여러 작업을 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16일 루나 재단은 트위터를 통해 "테라의 가격 방어를 위해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보유 중이던 비트코인 8만여개를 사용했고 313개가 남았다"고 밝혔다. 루나 재단은 "테라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비트코인(BTC), 테더(USDT), 바이낸스코인(BNB) 등 준비금 중 총 3조5000억원어치를 테라로 교환했다"는 입장이다. 루나 재단이 밝힌 현재 남은 준비금은 비트코인 313개, 바이낸스코인 3만9914개, 아발란체(AVAX) 197만3554개, 테라(UST) 18억4707만개, 루나 2억2271만개 등으로 16일 오후 시세로 환산하면 약 3억2230만 달러(약 4100억원) 규모다. 루나 재단은 "남은 자산은 테라의 소액 보유자에게 우선 보상하는 데 쓰겠다"며 "다양한 배포 방법을 논의 중이고 곧 알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홈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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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루나와 테라의 폭락으로 시가총액 58조원 가량이 사라지며 암호화폐 업계의 '고래(대형 투자자)'도 막대한 손실을 봤다. 테라폼랩스가 지난해 7월과 지난 2월 11억5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를 모금할 때 돈을 댄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와 판테라 캐피털, 점프 크립토 등이다.
이들에 대해 블룸버그는 “테라의 후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꿈꿨지만 이제 꾐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 디지털 대표는 지난달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자신의 팔에 ‘LUNA’라고 새긴 문신 사진과 함께 “나는 루나의 광팬”이라며 권 대표에게 감사를 표했다.
테라 생태계의 폰지 사기 논란에 루나 재단이 보유한 비트코인의 행방까지 묘연해지면서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지난 12일 “권 대표는 암호화폐계의 엘리자베스 홈즈”라고 보도했다. 테라노스 CEO였던 홈즈는 피 몇 방울로 26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이른바 ‘에디슨 키트’를 개발해 억만장자가 됐지만, 이 기술이 사기라는 내부고발자의 폭로로 몰락했다.
코인데스크는 “홈즈는 사업에 실패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기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투자자들을 속였다”며 “권 대표 역시 앞서 실패한 다른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처럼 테라가 실패할 것을 알고도 투자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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