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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 5월 첫날이면 들려오는 스위스 아이들의 노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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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올라와 보세요. 몰레종으로"…그뤼에르 지역 아이들은 봄의 전령사

뉴스1

전통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스위스 아이들. 인터넷 갈무리 © 신정숙


(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1.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Ho !
Dans la Suisse, il y a une montagne 스위스에 산 하나가 있네
Des plus hautes, des plus belles 더 높고, 더 아름다운
Si vous avez la curiosité 궁금하다면
Prenez la peine d’y monter 꼭 올라와 보세요.
A Moléson, à Moléson 몰레종으로

#2.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La ridi li ho ! Ho !
Din la Chuiche lya ouna montanye
Di plye hôtè, di plye balè (bis)
Che vo j’ê la curiojitâ,
Prindè la pêna dè montâ
A Moléjon, a Moléjon

라 히디 리 호 ! 라히디 리 호 !라 히디 리 호 ! 라히디 리 호 ! 호 !

스위스답게 요들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세 가지 버전이 있다. 위의 두 버전인 지역 방언과 불어 버전이 있고 독일어 버전이 있다. 한국처럼 스위스도 지역마다 방언이 있다. 제주도민이 아니면 제주 방언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곳의 방언도 그렇다. 이곳 출신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대화 중에 사투리를 쓰기도 하지만 이렇게 노래로 듣는 게 아니라면 방언을 듣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 노래는 5월이 시작되는 첫 날, 마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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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지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산, 몰레종 © 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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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 지역이 있는 스위스 프리부흐 주의 모든 초등학교는 5월 1일 휴교다. 아이들은 여느 휴일처럼 학교를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작은 가방을 하나씩 메고 집을 나선다. 혼자 또는 친구들과 짝을 지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봄을 알리는 노래 불러주는 전령사들이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이 지역에 내려오고 있고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지금도 이 날이 되면 아이들을 흥분시키는 중요한 행사다.

이 전통이 언제부터,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 지역에서만 오래 전 봄을 알리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오고 있다. 학교를 가기 시작한 만 4세의 아이들은 언니나 오빠, 또는 엄마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러 다니고, 그 후 몇 년의 경험이 쌓이면 친구들과 계획을 세워 아침부터 점심 시간 전까지, 점심 식사후 저녁까지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돌아온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코디언, 바이올린, 피리를 연주하거나 친구가 노래를 부르면 반주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보답을 한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 놓은 동전과 초콜릿, 사탕, 비스킷 등을 준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아이들은 점점 무거워지고 채워져 가는 가방을 메고 행복해 한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보답으로 주는 동전의 액수도 높아졌고 과자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시내의 상점들은 돈보다는 홍보용 상품들-배낭, 스포츠 타올, 우산 등-을 별도로 제작해서 주기도 하고, 하루 종일 아이들만 상대하는 담당자를 따로 두기도 한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한 두 해 전 부터 가게로 몰려오는 아이들이 급격하게 늘어서 시간 제한을 두거나 때론 자체 휴일을 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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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받아 온 동전과 과자들. © 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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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늦은 오후가 되면 동네의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청년들로 구성된 그룹이 큰 트렉터를 타고 방문한다. 이들은 일주일 전부터 매일 저녁 전통복을 갖춰 입고 노래를 부르러 다닌다. 노래를 들은 집주인들은 답례로 돈과 간단한 음료 또는 화이트 와인(스위스는 만 16세부터 독주를 제외한 일반 술을 마실 수 있다)을 대접하기도 한다. 마을마다 있는 청년 그룹은 이 행사뿐만 아니라 콘서트, 지역 청년 축제, 스포츠 행사 등을 열고 있다. 한 동네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나이가 되면 그룹에 소속해서 행사나 축제 등을 기획하고 즐긴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서 용돈도 벌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다가 초콜릿이나 사탕을 까먹으며 추억을 쌓는다. 반면 어른들은 티없고 순수한 꼬마들부터 청년들까지, 그들이 부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듣는 재미, 그 대가로 작은 동전과 사탕을 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노래’ 하나로 나눌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다.

그뤼에르는 아직도 작은 마을이 많아서 이 전통을 유지할 수 있기도 하고, 휴교를 허락한 칸톤과 꼬뮨의 정책, 반갑게 맞아주는 어른들과 매년 즐겁게 참석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면 보답으로 ‘돈’을 주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설날 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전통이 아닐까 싶다.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전통, 아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함께 즐거운 날, 마을 전체가 다 같이 즐기는 이런 행사가 점점 드물어지는 요즘에 이렇게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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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을 입고 노래 부르는 그뤼에르 사람들. 인터넷 갈무리© 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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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재미를 쫓아 본능적으로 다니는 것 같다. 그 아이들이 쫓는 재미에 어른들도 함께 즐기고, 더불어 지역 방언으로 부르는 노래도 들을 수 있는 날, 그뤼에르의 5월은 샛노랑으로 들판을 가득 메운 활짝 핀 민들레꽃처럼 밝고 환하게 시작된다.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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