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産 가스·석유 금수조치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지각 변동
EU,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年內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기로
나이지리아·앙골라 등 대안 떠올라…
독일은 세계2위 LNG 공급국 카타르와 에너지 협정 체결
블룸버그 통신은 3일(현지 시각) EU 내부 문건을 인용해 “EU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올해 안에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했다”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모두 중단하는 금수 조치에 대한 합의가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U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자, 러시아의 최대 고객이다. 독일 도이치벨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두 달간 EU가 사들인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는 460억유로(약 61조원)어치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천연가스와 석유 판매로 약 2000억달러(약 253조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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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당초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반대로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에 쉽게 나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EU 통계청이 집계한 EU 회원국들의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 의존도는 각각 41%, 27%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독일이 금수 조치에 찬성으로 급격히 돌아섰고, 오스트리아도 “대세를 따르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EU가 (전면적 에너지 금수를 포함한) 대러 6차 제재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아프리카산 에너지가 자리 잡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EU는 러시아 에너지의 대안으로 나이지리아와 세네갈, 앙골라에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늘리고, 남수단과 가봉에서 신규 수입 계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탈리아는 최근 알제리에서 천연가스 수입을 40% 늘리는 데 합의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산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며 “특히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가봉 등 서아프리카 국가가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EU는 아프리카산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유전 개발 촉진이 탄소 줄이기에 역행한다는 이유를 들어 도외시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
EU는 카스피해 연안국 아제르바이잔의 천연가스 수입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현재 연간 80억㎥인 수입량을 연내 100억㎥로 늘리고, 향후 연간 200억㎥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집트, 이스라엘과는 올여름까지 유럽에 대한 LNG 수출을 보장하는 3자 양해각서(MOU)를 맺기로 했다. 독일은 지난 3월 세계 2위 LNG 공급국인 카타르와 장기적 에너지 공급 협정도 체결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몇 주 동안 EU 고위 관리들이 줄줄이 카타르를 찾아 천연가스 공급을 요청하고 있다”며 “특히 러시아가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한 이후 그 행렬이 더욱 길어졌다”고 전했다.
EU는 이 밖에도 미국산 LNG 150억㎥를 올해 추가로 수입하고, 2030년까지 매년 500억㎥를 들여오기로 했다. 캐나다와도 가스 교역량을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EU는 이런 식으로 1500억㎥에 달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올해 중 70%가량 줄이고, 2030년까지 다른 지역산으로 완전히 대체할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1·2차 석유 파동(오일 쇼크)과 1990년대 러시아의 에너지 시장 본격 진입에 이어, 또 한 번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 전망이다. 다니엘 예르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부회장은 “러시아 에너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며 “세계 에너지 시장은 극적이고도 예상치 못한 격동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과 일본이 이미 자국으로 향하던 LNG를 유럽으로 돌린 데 이어, 카타르가 앞으로 아시아에 대한 수출 물량 일부를 유럽으로 돌리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LNG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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