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아조프 연대 주장
“병사들 호흡곤란·거동장애” 사실 확인 땐 美 개입 명분 커져
러시아군 점령지 약탈도 드러나… 병사들이 택배로 집에 물건 보내
군 지휘부는 방치하거나 조장
독일 dpa통신은 11일(현지 시각)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 아조우(아조프) 연대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무인기가 정체불명의 화학 물질을 배출했고, 근처에 있던 우리 병사들이 호흡곤란과 거동 장애 등의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안드리 빌레츠키 아조우 연대장은 “부대원 3명이 화학 물질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dpa통신은 “아조우 연대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군의 화학무기 사용설에 대해 긴급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 정권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도 “(아조우 연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된다”며 “러시아가 화학 작용제와 섞은 최루가스 등을 폭동 진압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대대적으로 약탈 행위를 벌였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더타임스 등은 1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와 마을에서 러시아군의 약탈 행위가 수십 건 보고됐다”고 전했다. 키이우 동쪽 75㎞에 위치한 노비이 바이키우는 한 달여간 마을 전체가 약탈 피해를 입었다. 보석과 향수, 와인 등 값나가는 물건들은 물론이고 노트북과 가전 제품 등 쓸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러시아군이 가져갔다. 이 지역 학교 교감인 나탈리아 삼손은 “학교의 데스크톱 컴퓨터와 프로젝터 등 교육용 전자 장비도 몽땅 사라졌다”며 “대형 플라스마 스크린은 가져갈 수 없으니 박살을 내놨다”고 말했다.
키이우 북서쪽에 접한 이르핀에서는 러시아군이 아파트 한 동을 차지하고 살면서 이곳을 통째로 약탈한 흔적이 드러났다. 한 아파트 주민은 “돌아와 보니 옷장이 텅 비어 있었다”며 “코트와 양복, 드레스, 부츠과 구두는 물론 속옷과 여성용 란제리까지 몽땅 털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러시아군이 가재도구를 대부분 부수고, 집안을 온통 쓰레기 더미로 만들었다”며 “액자 속 가족 사진을 꺼내 온통 찢어 놓기까지 한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일부 가정엔 벽에 러시아어 욕설과 함께 우크라이나인들을 ‘나치’라고 비난하면서, 인분(人糞)칠까지 해놓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장물(贓物)을 러시아의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 벨라루스 국경 마을 마지르에서는 지난 2일 키이우에서 퇴각해 온 러시아군 장병들이 약 3000㎏에 이르는 택배를 러시아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벨라루스 현지 매체들은 “택배 사무실 CCTV에 TV와 가전제품, 각종 의류, 낚시 장비, 자동차 용품 등을 포장하는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이 찍혔다”며 “택배는 러시아 남부 알타이 오지(奧地)의 빈촌(貧村) 루브초프스트로 보내졌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는 “러시아군 전화 도청에서 가족과 무엇을 훔치면 좋을지 상의하는 내용도 나왔다”며 “약탈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행해졌으며 지휘부가 이를 방치 혹은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저명한 러시아 인류사회학자 알렉산드라 아르히포바는 가디언에 “러시아 군인 상당수가 명분 없는 전쟁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을 부조리하게 느낀다”며 “(약탈을 통해) 최소한 실리를 챙길 수 있다며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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