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19년 5월 당시 강효상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 일부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외교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파면 처분을 받았다.
이후 A씨는 해당 징계의 효력을 멈춰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외교부는 이에 불복해 항고와 재항고를 거듭했지만,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까지 지난달 11일 최종적으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징계로 받는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와 별개로 A씨에 대한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형사 재판과 A씨가 징계에 불복해서 제기한 파면 취소 소송은 여전히 법원에 계류 중이다. A씨에 대한 파면 징계는 해당 소송들이 결론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잃게 된 것으로, A씨의 기밀 누설 행위에 대한 판단 자체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이에 A씨는 복직했지만, 아직 직책을 받지 못한 채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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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트럼프 통화 내용 유출 혐의
정상 간 통화 내용은 통상 ‘3급 국가기밀’로 분류된다. A씨가 강효상 의원에게 알려준 내용 중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문 대통령이 ‘대북 메시지 발신 차원에서 필요하고 한국 국민이 원한다’는 취지로 방한을 요청하고,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쁘지만 주한미군 앞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 방문 후)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방식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답한 부분이었다.
강효상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9년 5월 A씨와의 통화에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 방한 협의 내용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강 의원을 외교상 기밀 누설 혐의로, A씨를 공무상 비밀 유출 혐의로 고발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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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강 의원은 2019년 5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A씨에게 들은 내용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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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엄정 대응", 강경화 "용납 못 해"
2019년 5월 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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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즉각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으라”고 지시했다.(2019년 5월 29일 국무회의)
청와대의 ‘격노’에 외교부도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징계위원회를 열어 사실관계도 파악하기 전인데,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고 규정했다. “용납할 수 없다”면서다. 징계위원장을 맡는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도 “고위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 해이와 범법 행위”라며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 조치”를 약속했다.
그리고 외교부는 곧장 A씨를 징계위에 회부해 비밀 엄수 의무 위반에 따른 파면 결정을 내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A씨의 기밀 누설 혐의와 관련 "용납할 수 없다"며 엄중한 문책을 지시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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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청와대의 ‘지침’이 하달된 상태에서 외교부는 절차적 하자도 무릅썼다. ‘판사·검사·변호사로서 10년 이상 근무한 법조인을 징계위 외부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는 법령을 어겼지만,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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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요록' 없어 공전하는 재판
외교부는 또 징계와 함께 A씨를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하지만 그래놓고 외교부는 정작 A씨가 유출한 내용이 ‘기밀’인지 여부를 판단한 결정적 근거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기밀 유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문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을 정리한 ‘통화 요록’이 필요하다는 게 A씨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통화 요록 자체가 기밀에 해당한다며 재판부에 이를 내지 않고 있다.
이에 A씨에 대한 형사 재판은 물론 A씨가 제기한 파면 취소 소송도 3년 가까이 공전 중이다. 애초에 A씨가 파면 효력 정지 가처분에 나선 것도 재판 지연으로 인해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A씨에 대한 기밀 유출 혐의를 다투고 있는 1심 재판은 외교부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기록한 '통화 요록'을 제출하지 않으며 공전하고 있다. 핵심 증거인 통화 요록 없이는 A씨가 강효상 의원과의 통화를 통해 구두로 이야기한 내용이 기밀 유출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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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처분도, 기밀 유출 낙인도 부당하다"
A씨 측은 강효상 의원에게 전달한 내용이 이미 기존에 공개된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실질적인 기밀’에 해당하지 않고, 만일 기밀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파면이라는 징계 수위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2006년 이른바 외교부 내 ‘동맹파 대 자주파’ 간 갈등 국면에서 이종헌 전 청와대 의전비서실 행정관이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3급 비밀문서인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록’ 문건을 통째로 유출한 데 대한 징계 수위는 정직 3개월에 그쳤다.
A씨의 변호인은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 공직에 복귀할 수 있고, 보다 수위가 낮은 징계로 조정될 가능성도 크다”며 “하지만 재판 지연으로 이런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A씨의 정년 퇴직(2024년)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A씨가 재판을 통해 적기에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를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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