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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 대러 제재서 똘똘 뭉쳤지만 정작 에너지 문제에선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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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의 90% 수입 의존…러시아산 비중이 40%

독일 등 대러 의존도 높은 국가는 제재 반대 입장

뉴스1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가 대화하는 모습.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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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유럽연합(EU)이 이례적으로 4차례나 똘똘 뭉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를 발표했지만, 정작 그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U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줄 실효적 조치인 에너지 제재 관련 이견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주요 7개국(G7)·EU 정상회의가 연속으로 열린 24일(현지시간) 미 ABC 뉴스는 그 결과에 대해 "EU가 4차례 대러 제재에 좀처럼 보기 힘든 단결을 유지했지만, 이날 정상회담에서 27개 회원국 정상은 가장 중요한 주제인 에너지 문제에서 분열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EU 정상들은 회담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석유와 가스 수입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3차례 브뤼셀 정상회담은 "단합"은 이끌어냈지만 러시아에 대한 보다 강한 조치를 내놓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 중앙은행 등 주요 기관과 기업에 대한 경제·금융제재를 발표한 데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제재하고 그의 '돈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다수도 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대대적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EU는 아직 '푸틴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 에너지 제재 관련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천연가스와 원유, 석탄의 최대 수출처로, EU의 에너지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다만 이 제재는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회원국들에게 '더 아픈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함정'이 있다. EU는 발전·난방·산업용 천연가스의 90%를 수입하고 있는데, 이 중 러시아 가스와 석유 수입 비중이 각각 40%, 25%정도를 차지한다.

이에 EU는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에 동참하지 못했다. 향후 미국 등의 도움으로 대러 의존도를 낮춰 가겠다는 다짐만 반복하고 있다.

모든 EU 회원국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를 계속 구매하는 한 우리는 전쟁 자금을 조달해주는 것과 같다"며 "이건 우리가 안고 있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르투르스 크리샤니스 카린슈 라트비아 총리는 "전쟁에 유입되는 돈줄을 막기 위해 푸틴의 경제를 계속 고립시켜야 한다"며 "가장 논리적인 귀결점은 석유와 석탄 (제재)"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드 크루 벨기에 총리는 "우리는 지금 우리끼리 전쟁하는 게 아니다"면서 "제재는 늘 우리 측보다는 러시아 측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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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논의하는 EU 정상회의 중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얘기를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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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천연가스 수입량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서 공급, 대러 에너지 제재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이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로 인한 유럽발 공급 경색으로 에너지 가격이 수개월 동안 치솟으면서 유럽의 에너지 안보 위기는 현실이 되기도 했다.

또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러시아 상품 수입액은 1585억 유로였는데, 이 중 광물연료가 62%인 989억 유로를 차지했다.

이날 EU 집행위는 결국 금수 조치 대신, 러시아산 의존도를 연내 3분의 2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EU는 미국과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 증대를 협의 중이며, 다른 공급처들과도 협의를 시작했다.

카린슈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도덕이 돈을 능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라트비아는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데도, 기업들이 나서서 거래 중단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우리가 푸틴 정권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서 "그냥 돈이다. 우리가 살아있고, 인프라에 문제가 없다면 이 돈을 재투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회원국간 에너지 제재 문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해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부과한 4가지 제재 조치를 강조하며, "현재 시행 중인 제재도 제가 정치인으로서 본 것 중 단연코 가장 어려운 조치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런 유럽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러시아의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와 에너지 관련 협력을 원치 않는 유럽 국가들은 '누가 어떻게 그들의 번영을 파괴하고 있는지' 자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안보 확보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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