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통화 긴축 선호)나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구분하기 어려운 중도파에 가깝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대한 한은 안팎의 평가다.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무난한 카드’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교수와 행정가, 국제기구 간부를 두루 거친 한국의 대표적인 거시경제·통화정책 전문가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주열 한은 총재도 “학식과 정책 운용 경험, 국제 네트워크 등 여러 면에서 출중한 분”이라고 평가하며 “저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조언드릴 것은 따로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1960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29세이던 89년 미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가 됐다. 학부 동기인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로체스터대에서 강의할 때 ‘올해의 교수상’을 여러 번 받았다”며 “실력은 물론 인품까지 갖춘 친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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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34세의 나이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임명됐다. 스승인 이준구 서울대 교수와 함께 쓴 『경제학원론』은 경제학도의 ‘바이블’로 통한다. 2007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 참여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틀을 잡았고, 2008~2009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2011~2013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발탁됐다. 201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랐다.
글로벌 인맥도 탄탄하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과는 하버드대 시절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다. 서머스 전 장관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를 IMF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닥터 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박사 과정 시절 사귄 동문이다.
신사임당의 후손이란 특이점도 있다. 이 후보자는 신사임당의 막내아들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아우이며 조선 중기 유명 서화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1542~1609)의 16대 종손이다. 190㎝대의 장신으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배구 선수로 활약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4년 임기의 새 한은 총재는 물가를 잡되 경기는 침체시키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며 “새 총재에겐 험난한 과제가 놓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올해 두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이 후보자의 금리 정책 입장은 그간의 공직 생활 등을 고려할 때 이 총재보단 ‘덜 매파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중앙일보 1월 6일자 1·8면)에서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조세·금리정책을 동원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지출을 늘리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한은이 사들이라는 주장(부채의 화폐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 후보자는 오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출발해 30일 오후 귀국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데 20일 정도 걸리는 만큼 이주열 현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직후인 다음 달 1일부터 초유의 한은 총재 공석 사태는 불가피하게 됐다.
황의영·안효성·이해준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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