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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유연탄값 7배 폭등해 생산할수록 적자" 시멘트업계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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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재發 산업계 비상 ◆

매일경제

시멘트 생산에 들어가는 유연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시멘트 공급 대란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20일 서울의 한 레미콘 회사에 레미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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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21년째 도료 도매업을 하고 있는 A사는 최근 글로벌 도료 제조업체 B사로부터 자동차 보수용 도료 가격 인상 안내 공문을 받았다. B사는 "작년 원재료 가격의 급등 현상이 연말에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속적인 원재료 시장 공급 악화로 인한 원재료 원가 급등을 감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부득이하게 가격 인상을 시행하게 됐다"며 보수용 도료 전 제품에 대해 이달 2일부터 10% 인상된 가격을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A사 대표는 "급하게 다른 도료 제조업체에 문의를 넣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로 다음달 1일 출고분부터 전 제품에 대해 5~8% 인상 요율이 적용된다는 공문뿐이었다"며 씁쓸해했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원자재 가격 인상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시멘트→레미콘→건설산업으로 이어지는 건자재 밸류체인에서 연쇄적인 가격 인상 도미노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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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시멘트 업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시멘트 생산에 들어가는 유연탄 가격이 이달 들어 t당 427.5달러를 기록해 2020년 평균 가격(60.5달러) 대비 7배 가까이 급등했다. 현재 가격대에서는 시멘트 생산 시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생산 실적인 클링커 4200만t을 기준으로 하면 시멘트 업계가 올해 유연탄 구입을 위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피해액은 약 1조55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작년 시멘트 업계 전체 영업이익(7000억원) 수준에 비춰 보면 올해 시멘트 사업에서 대부분 업체가 적자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유연탄 외에도 연료비, 인건비, 전력비, 운송비 등 시멘트 제조원가 전반에서 급격한 상승이 동반되고 있어 설비 효율화와 원가 절감 등 업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연탄뿐 아니라 생활 및 식품용기, 필름, 전선 등에 쓰이는 에틸렌과 전력전자 제어장치용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소가스 등 중소기업이 주로 영위하는 업종의 원자재 가격이 최근 모두 급등세다. 전자기기·배터리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원재료 니켈은 현재 t당 4만2995달러를 기록 중인데 이는 한 달 전 가격에 비해 74% 넘게 오른 수준이다.

러시아 정부가 목재 제품 판매와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면서 목질 원재료 수급이 중요한 가구·인테리어 업계 역시 긴장하고 있다. 국내 목재 전문기업 C사는 최근 가구·인테리어 핵심 자재인 MDF(나무의 섬유질을 추출해 가공한 목재) 등 주력 제품 생산 과정에서 곤란을 겪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용 절감과 단가 인상을 두고 업계 간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격을 올린 시멘트 업계가 추가적인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레미콘 업계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시멘트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통보해도 우선 공급은 해주면서 단가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게 관례였는데 올해는 일방 통보된 가격에 결제를 하지 않으면 아예 물건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 업계에도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2월 말 전국철근콘크리트 연합회는 원도급사인 건설사에 하도급 대금을 20%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현장 '셧다운'을 예고했다. 일부 회원사는 지난 2일 전국 20여 개 현장에서 한때 공사를 중단했다. 현재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지만 철근콘크리트업체들은 언제든 공사 현장이 파행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시공사 또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발주처에서 주는 돈을 받아 하도급 계약을 하는 구조로, 급작스럽게 단가 상승을 반영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기업이 의무적으로 협력업체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는 것이다. 건설 업계에서는 건축비 인상폭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분양가상한제에 대한 제도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기본형 건축비는 2월과 9월에 발표되는데, 급등한 자재 가격을 분양가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 이후 분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분양이 특정 시점에 쏠리게 된다면 자재 수급 문제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자재 수요가 특정 시점에 쏠리지 않도록 분양가상한제 책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 발표 주기를 짧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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