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3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리터당 2290원에 판매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며 6주째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2.3.3/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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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빠른 속도로 이상 급등하면서 정유업계도 비상 경계태세로 돌아섰다. 원가 상승은 물론 휘발유 등 제품가 급등으로 석유제품 전반 수요마저 크게 위축된다면 정제마진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단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정된다.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부진을 떨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 팬데믹 당시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단 우려가 높아진다.
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제 원유 트레이더들은 국제 유가 선물 가격이 2008년 최고치 기록에 도달 이후 더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는 한편 그 중 일부는 3월 말 배럴당 200달러까지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 3대 유가 중 하나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지난 6일(현지시간) 배럴당 130.21달러를 기록해 연중 최고치를 썼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날 유가는 하루 만에 10.24% 올라 이례적 상승폭을 기록했다.
2008년 7월 유가는 배럴당 146.08달러까지 올랐었다. 현재 시장은 그 이상까지도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JP모건도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를 전제하고 연말 유가가 18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지정학적 불안으로 기존 전망이 무색할 정도의 유가 급등 현상이 지속되면서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유가상승=정유업계 호재'라는 기존 공식이 깨지는 구간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주까지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큰 타격은 없지만 수요위축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수준의 분위기에서 경계감이 더욱 고조된 것이다. 당장 2분기 중 일각에서 비상가동에 돌입할 것이란 추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정유업계 수익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유가가 아닌 정제마진이다. 정제마진이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뺀 값으로 업계에서는 통상 4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인식한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수요가 뒷받침돼야, 즉 제품 판매가도 함께 올라야 정유사는 안정적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정제마진은 한 때 '마이너스'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었다. 정유사들이 수조원 대 사상 최악의 적자를 봤을 때다.
지난해 말로 갈수록 전세계 방역조치 완화, 이동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정제마진은 배럴당 7~8달러 수준까지도 회복했었다. 2월 중순까지도 7달러 수준을 유지했지만 가장 최근인 3월 첫 주에는 5달러대로 내려왔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 분쟁이 장기화된다면 최악의 경우 정제마진이 다시 마이너스로 급락할 가능성까지도 거론된다"며 "정유사가 통상 2~3개월 전에 원유 도입을 확정하기 때문에 당장은 큰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사태가 지속된다면 5월부터는 팬데믹 당시처럼 가동률을 낮추는 정유사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미국에서 검토중인 러시아산 원유 금수 법안이 실제 현실화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러시아산 원유는 사실상 통용되기 힘들어진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원유 전체 수입량(9억6000만배럴) 가운데 러시안 비중은 5.6%에 불과했다. 단 세계 3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산 원유가 전세계에서 증발된다면 원유 수급이 지금보다 더 빠듯해질 수 있다. 현재 국제 유가 상승세에도 이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정유업계에서 보기에 석유제품 수요 측면도 고민스럽다. 국내 전체 수요 가운데 약 4.2%(2019년 기준)에 달하는 항공유 수요가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정유사들의 고객사인 화학업계는 전년 대비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원료가 되는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주문을 더욱 줄일 수 있다. 정유제품 가운데 나프타 비중은 47.1%에 달한다.
더욱 최악인 상황은 휘발유 가격의 고공행진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8일 서울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00원을 돌파했는데 이는 7년 여 만에 최고치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국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본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항공유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데다 휘발유, 등·경유 수요마저 위축된다면 정유업계가 입는 타격도 다른 산업 못지 않게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기준 휘발유, 등·경유 소비 비중은 전체 석유제품 소비에서 약 30%에 달한다.
한편 정유업계 내부에서는 언젠가 찾아올 '유가 급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는 재고평가 이익을 보지만 반대로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시 재고평가 손실을 본다. 이 역시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벌어졌던 일이다. 이 때문에 국내 대표 정유기업들은 현재 유가 수준별 시나리오 플랜을 수시로 수립·검토하면서 유가 급등 뿐 아니라 유가 급락의 가능성까지도 면밀 주시하고 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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