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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무수한 반복을 통해 우스꽝스러워진다" [신간의 문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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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보행연습, 금파, 한자와 나오키, 완전범죄

뉴스1

우주순양함무적호, 이욘티히의 우주일지, 솔라리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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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3월 첫째주에는 폴란드 SF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작들이 폴란드 원전으로 번역됐다. 우주순양함무적호, 이욘티히의 우주일지, 솔라리스 등이다.

여기에 비일상적 상상력을 펼쳐온 돌기민이 식인 외계인을 소재로 한 '보행 연습'을 내놓았고 구한말 실존인물 허금파의 일대기를 다룬 '금파'도 서고에 꽂혔다.

660만부를 판매한 일본 추리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원이자 탐정인 한자와나오키가 오사카로 전근한 이후 거장의 미발표작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쳤고 다이몬 다케아키는 연쇄유괴사건을 중심으로 사법부의 헛점을 다뤘다.

◇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민음사/ 1만7000원

폴란드 SF작가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은 '화성에서 온 사나이'를 비롯해 다양한 SF작품을 통해 기술문명의 본질을 파헤져 영향력이 높다. 민음사가 공인된 폴란드어 판본을 번역한 '솔라리스'는 외계생물체와 조우하는 접촉 3부작 가운데 하나이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스티븐 소더버그가 영화로 만든 바 있다.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두운 구석이나 미로, 막다른 골목, 깊은 우물, 그리고 굳게 닫힌 시커먼 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까지 진출하고야 말았다."

"우리는 고통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이러한 무수한 반복을 통해 고통이 점점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우스꽝스럽기에 그 고통이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인간 존재의 반복적인 재생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술에 취한 주정뱅이가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고 계속해서 틀어 대는 진부한 멜로디처럼 재생할 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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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연습, 금파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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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행 연습/ 돌기민 지음/ 은행나무/ 1만3000원

2017년 텀블벅 모금을 통해 출간한 '아잘드'를 개고해 정식출판했다. 주인공 무무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생명체다. 무무는 데이팅 어플로 만난 상대를 성관계 직후에 잡아먹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 작품은 식인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통해 젠더, 장애, 육식, 트랜스 휴먼 등의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노인도 지하철이 미어터지면 어쩔 수 없이 서 있어야 해요. 내 처지와 흡사합니다. 나는 노인이 자리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등을 떠밀며 새치기를 일삼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손잡이를 잡으려 홀로 발악하는 모습을 종종 지켜봅니다.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료 의식을 느낍니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93쪽)

◇ 금파: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다산책방/ 1만5000원

제1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이며 구한말 실존인물 허금파의 일대기를 다뤘다. 금파는 1902년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소리꾼이다.

"승윤이 길을 가다 멈췄다. 금파는 생각에 빠져 그가 멈춘 걸 보지 못했다. 쿵! 금파의 얼굴이 승윤의 어깨에 부딪혔다. 몸으로 나를 얻으려느냐? 승윤이 버럭 화를 냈다. 금파는 피식 웃음이 났다. 병이 있소? 그러지 않고서야 몸 하나 부딪혔다고 사랑 타령을 한단 말이오?"(33쪽)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 소리였다. 당분간 금파가 승윤을 보살피기로 했다. 승윤도 금파와 있을 때는 말랑말랑해졌다. 방자로 돌아와 능청스레 공연의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때로는 동리정사에서 봤던 장난기 어린 승윤이 되어 금파의 마음을 흔들었다."(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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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와 나오키: 아를르캥과 어릿광대/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인플루엔셜/ 1만5800원.

660만부를 판매한 일본 추리소설 '한자와 나오키'가 거장의 미술품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아를르캥과 어릿광대'으로 돌아왔다. 신흥기업이 거장의 미발표작을 놓고서 전통의 미술출판사를 인수하려는 음모를 은행원이자 탐정인 '한자와 나오키'가 밝혀낸다.

"친구인 도마리 시노부가 고마운 충고를 해주었지만, 그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다. 얌전히 있으면 소문이 잠잠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아무리 상사와 인간적인 궁합이 맞지 않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적당히 넘기는 게 월급쟁이의 처세술이다"(13쪽)

"이건 벽에 그린 낙서입니다…아마 10억 엔쯤 될 겁니다. 니시나 조의 작품이고, 더구나 아를르캥과 피에로라는 인기 있는 주제에다, 시간적으로 보면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215쪽)

◇ 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검은숲/ 1만4500원

다이몬 다케아키는 사법 문제를 집중해 다루는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가다. 그의 대표작 '완전무죄'는 연쇄유괴사건을 중심으로 경직된 사법제도의 모순을 질문한 작품이다.

"경찰의 정의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 검찰의 정의는 재판에서 지지 않는 것, 내가 있던 법원의 정의는 법적 안정성. 변호인의 정의도 마찬가지야. 뻔하디뻔한 변호를 해놓고, 부당한 판결이니 뭐니 부르짖을 뿐 현실에는 눈길을 주지 않지. 모두가 정의에 매몰되는 바람에 무고하고 약한 사람만 눈물을 흘려."(91쪽)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 형사소송법의 기본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범인 체포가 강력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수사본부가 용의자를 점찍으면 이 원칙은 일그러진다."(187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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