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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못가져…욕망 멈추게 하는 게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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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제구호 전문가인 묘장 스님이 자신이 주지로 있는 서울 노원구 학도암 대웅전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스님은 "자비심만이 세상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도서출판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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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번에 낸 책은 그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국제구호 전문가인 묘장 스님(50·서울 학도암 주지)이 '도표로 읽는 부처님 생애'(민족사·배종훈 그림)를 펴냈다. 오묘하고 깊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선 부처님의 생애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부처님 탄생게 중에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 세계가 모두 고통받고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에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와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코로나에, 전쟁에, 기후변화에 지구는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부처님 탄생게 중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님은 책을 만들면서 분량의 한계 때문에 소중한 가르침을 다 담아내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스님에게 부처님의 생애는 그 자체로 가장 명료한 가르침이었다. "처음 출가했을 때부터 부처님의 법문이 아닌 부처님의 행동이 궁금했습니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제자들을 대했고, 순간순간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부처님 행동의 궁극적 목적이 '온 세상을 편안케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국제 긴급구호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스님은 도움이 필요한 재난이 벌어진 곳마다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일본 대지진, 아이티 대지진, 네팔 대지진, 태국 대홍수 등 재난 현장에는 늘 스님의 손길이 있었다. 재난이 없을 때는 어린이 교육사업과 가난 구제사업에 매달렸다.

"재난 현장에서 실종자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짧게 애도 의식을 진행할 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교와 국가를 막론하고 애도 의식은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는 일이며 살아 있는 사람을 치유해주는 일입니다."

스님은 절차나 비용 등 여건상 한국 구호팀이 현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의 재난 구호 기구들은 현지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몇 주 정도가 보통이죠. 그런데 구호가 제대로 되려면 6개월 이상은 가 있어야 합니다. 유럽의 구호단 같은 경우는 운동장 하나에 아예 임시 종합병원을 세워놓고 지진 피해자들을 진료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제 구호 역량을 확대해야 할 때입니다."

1991년 직지사에서 웅산 스님을 은사로 녹원 대종사를 계사로 득도한 스님은 불교계에서 알아주는 사회복지·국제구호 전문가다. 연화사 주지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국제 구호단체 더프라미스의 이사다.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출가했어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태어나서 살다 병들고 죽는 거잖아요. 유일하게 그것을 뛰어넘는 삶을 사는 게 출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가 후 고통을 소멸하는 방식이 '자비심'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스님이 출가 생활 중 버팀목처럼 생각하는 불경 구절이 '제행무상(諸行無常·세상 모든 행위는 늘 변하며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이다.

"모든 건 변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을 볼 때는 무상함으로 관찰하고, 일을 할 때는 무한히 변화하는 가능성의 눈으로 봅니다."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에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욕망의 멈춤'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차피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욕망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 욕망을 멈추게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 종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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