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 중립국 유지 등 최후통첩성 요구
친러 반군의 영토확장 시도 지지입장도 표명
나토 “러, 전면 침공 위한 계획 세워” 비판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0㎞ 떨어진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에 군 병력과 장비들이 새로 배치된 모습을 촬영한 위성사진. 벨고르드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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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파병이 당장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이미 러시아군이 이 곳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토는 특히 러시아가 친러시아 반군들의 관할 지역 확장 등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 전면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상원은 2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요청을 승인했다. 리아노보스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상원의 파병 승인 뒤 기자들에게 돈바스 지역에 친러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요청이 있으면 군사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지금 당장 군대가 그 곳으로 간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며 “가능한 행동들의 구체적인 구상을 미리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파리에서 열린 EU외교장관 긴급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이 돈바스에 진입했다”며 “본격적인 침공은 아니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땅에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지난밤(21일) 추가적인 러시아 병력이 돈바스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돈바스에서 오랜 기간 비공식적인 작전을 해왔지만 이제는 공개적인 군사행동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근에 병력을 보강한 정황도 포착됐다. 미국 위성업체 맥사는 21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우크라이나 북쪽 접경지인 벨라루스 남부 지역에 군용차량 100여대와 막사 수십개가 새로 배치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의 러시아 서부 지역에 병력이 새로 배치됐고, 중장비와 전차 등을 이동시킬 수 있는 수송차량도 목격됐다. 야전병원이 추가 건설된 모습도 관찰됐다.
아직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과의 직접적인 충돌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의 지원을 계기로 친러 반군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독일 dpa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발표를 인용해 친러 반군들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군 병사 2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지역에서 반군 소속 군인도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은 23일 대피를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의 다음 행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러시아 군의 돈바스 지역 공개 파병 시점과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인정한 DPR과 LPR의 영토는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행정구역 모두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친러 반군들의 통제 지역은 이들 지역의 3분의 1에 불과한 만큼 향후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나머지 지역에 대한 반군의 점령 공세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 통제 지역으로 진입하게 되면 무력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나토는 푸틴 대통령의 이런 움직임을 전면전 계획의 일부로 보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모든 조짐들이 러시아가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계획을 계속해서 세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23일 언론인터뷰에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해 키예프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위기 해소를 위한 조건으로 내놓은 것들도 “최후통첩처럼 들린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며, 부분적으로 비무장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국제사회가 합법적 조치로 인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들 요구사항에 대한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의 대응에 따라 군의 움직임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은 23일 ‘조국 수호자의 날(군인의 날)’ 기념 연설에서 “러시아는 직접적이고 정직한 대화, 가장 어려운 문제의 외교적 해결 모색 등에 항상 열려있다”며 “하지만 러시아의 이익과 국민의 안전은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이사회는 돈바스 지역을 제외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30일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주 안에 의회 공식승인을 거쳐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지역에 따라 외출이나 야간통행이 금지되고 검문이 강화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22일 유사시에 대비해 예비군 소집령을 내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작전 상황의 모든 가능한 변화에 대비해 준비상태를 강화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군과 다른 군사 조직들을 즉각 보강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총동원령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외교적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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