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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입양 생태계로의 여정… ‘모두의 입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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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한 우리나라라지만, 최근에도 양천 입양 아동학대 사망 사건(정인이 사건) 등 온 국민을 공분케 한 입양과 아동학대가 뒤얽힌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보도는 물론, 수사와 재판 등이 이어지며 다양한 측면이 조명된 뒤에야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후회가 쏟아진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입양이 이뤄지기 전, 이뤄지는 과정에서부터 일찌감치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진 뒤에도 입양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오랜 기간 ‘입양은 사랑입니다’라는 문구뿐 아니라, 입양부모는 무조건 천사여야 한다는 이미지 등을 앞세워온 탓인지 입양 아동에 대한 측은지심이 훼손되고 입양이 줄어들까 하는 우려가 여론을 잠식해왔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러한 비극이 끊이지 않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입양은 사랑이기 때문에 계속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되는 것이다.

결국 입양이라는 현실이 시작된 뒤에 입양인과 입양부모, 친생부모 등 입양 당사자들이 겪는 문제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으로 감싸며 아이를 키워야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입양을 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시선이 두려워 현실적인 각종 어려움은 그렇게 남몰래 곪아갔다.

세계일보

일련의 입양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이 끊이지 않지만, 애초에 아동을 학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입양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아동보다 입양가정에 치우친 입장에서 진행된 경우는 많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아이 하나는 키워야 하지 않을까, 외동이면 외롭다는데 동생이 있으면 더 낫지 않을까, 고아원이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가정을 만들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아이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보다는 보다 어린아이를 찾고, 최대한 짧은 기간 내에 입양 절차를 진행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세 아이를 입양한 엄마이자, 입양 사후 서비스 기관인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설아 센터장이 ‘모두의 입양’이란 책을 발간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접해온 입양이 아닌, 저자의 경험과 입양가정을 상담한 사례를 통해 현실 속에서 겪는 입양인, 입양부모, 생부모의 삶을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입양 자녀와 울고 웃으며 성장통을 함께 겪는 입양부모들, 음지에서 숨죽이며 지낼 수밖에 없는 생부모들,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꺼내지 못하는 입양인들, 건강한 입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생생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선한 이미지로 박제된 빈약한 입양 생태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조명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굳어진 입양에 대한 선입견에 균열을 낸다. 또한 입양을 단순히 입양부모의 숭고한 헌신으로 내보이지 않고 가족을 이루는 한 형태라는 사실을 이웃과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개인의 입양에서 모두의 입양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입양 가족의 삶이 무언가 모자라거나 낯설지 않은 다양한 삶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입양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뿐 아니라 입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촘촘한 제도가 필요하다. 입양인과 입양부모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검증과 교육, 입양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지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생부모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등이 절실하다. ‘아동 중심의 입양’의 관문을 지나 입양인·입양 부모·생부모 중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입양이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지 않으며, 입양 아동이 섬세하게 분리되고 안전하게 연결되는 입양을,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질 때 개인이 책임지는 입양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지는 입양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삶으로 들어온 입양, 현실의 입양은 결코 아름답고 매끈하지만은 않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뿐 아니라 당사자들의 욕구가 뒤엉키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단하고 부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여정’이란 말로 갈음한다. 모두가 입양의 더 많은 면을 이해하고, 실체를 알며, 함께 가꿔나가기 위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은 단순히 입양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가족 형태의 다변화, MZ세대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인한 사회관념 변화, 복지의 확대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고민과도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 센터장은 “입양계에 뿌리내린 15년간 입양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더 많은 이들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함께해 달라고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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