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강기덕 선생 초상 |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3·1운동과 항일단체 '신간회'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강기덕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28일 밝혔다.
보훈처는 "강기덕 선생은 3·1운동을 시작으로 신간회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후에도 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설명했다.
1886년 원산 출생인 선생은 3·1운동 당시 보성법률상업학교 재학 중 학생대표로 참여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다. 민족대표 48인은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외에 선언서의 인쇄·배포, 탑골공원 만세시위 등 3·1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한 핵심 인사들을 말한다.
선생은 당시 독립선언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3월 5일 2차 시위에서 깃발을 흔들며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돼 1년 반의 옥고를 치렀다.
경작제도 개선을 통한 농민 수입증진 관련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또 체포돼 6개월 옥살이를 한 뒤에는 1927년 7월 11일 신간회 원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됐다.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한 좌우연합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일제강점기 가장 규모가 컸던 사회운동 단체다.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하면서 언론 자유를 촉구하고 불량지주의 죄악 조사를 요구하는 '함남기자연맹' 사건에 연루돼 또 징역 8개월을 받았다. 출소한 뒤에는 신간회 원산지회장에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산 학생들이 일으킨 반일 시위에 연루돼 1930년 2월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1931년 이후에는 원산노동조합 간부로서 노조 재건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또 옥고를 치렀고,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중앙위원을 맡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분투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6·25전쟁 중 납북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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