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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日 수도권 아파트, 버블 붕괴전 가격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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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재팬 인증샷]

“신축 맨션(아파트) 물건이 요즘 정말 귀해요. 지하철역이나 좋은 학교에 가깝고 재개발 이슈가 있는 지역은 가족용 신축 물건 인기가 엄청납니다. 지금 보시는 물건은 싱글이나 신혼부부만 쓸 수 있는 좁은 집이어서 남아있는 거에요.”

지난 연말, 도쿄 중심가의 유명 부촌 에비스(恵比寿)와 다이칸야마(代官山) 사이에 위치한 신축 맨션 분양 상담소. 유니폼을 갖춰 입은 건설사 직원이 층고가 높은 로비에서부터 분양 상담을 온 기자 일행을 맞았다. 별도로 마련된 개별 상담실에선 영업 사원이 명함을 건네고 자기 소개부터 시작했다. 일행의 고용 상태와 현 소득, 저축액, 희망 주택 가격, 결혼 계획 등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그는 열띤 설명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맨션’은 도쿄와 같은 도심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로 한국의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을 말한다.

조선일보

기자에게 소개한 매물은 거실 옆에 작은 방 한 칸이 딸린 33.28㎡(약 10평)의 집. 구조는 한국 오피스텔과 비슷했지만 가격은 약 6500만엔(약 6억8300만원)에 달했다.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도쿄의 최고 번화가 시부야(渋谷)역에 걸어서 10분 내로 갈 수 있어 ‘가격 하락이나 되팔기 걱정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도쿄에서 집을 사면 무조건 떨어진다는 건 옛말”이라며 “요즘 능력 있는 젊은 부부들이 특히 매매에 뛰어드는 중”이라고 했다. 상담 2주일 뒤, 맨션 건설업체는 “전에 상담하신 맨션은 모두 팔렸다”고 알려왔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나라’ 일본에서 도쿄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축 맨션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21년 도쿄도와 가나가와·지바·사이타마현 등 수도권 지역의 신축 맨션 평균 가격은 전년보다 2.9% 오른 6260만엔(약 6억5800만원)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신축 맨션 평균가는 지난해 30년 만에 6000만엔대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최고가는 버블 경제 붕괴 직전인 1991년 6123만엔이었다.

도쿄 23구로 한정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쿄 23구 내 신축 맨션 평균가는 전년보다 7.5% 상승한 8293만엔(약 8억7200만원)으로, 이 역시 1991년 8667만엔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최고가 기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수도권 신축 맨션의 가격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며 “2022년에도 수도권의 새집은 일반 서민에게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1990년대 초 버블 경제 붕괴와 부동산 폭락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집을 사지 않고 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동산(不動産)은 부동산(負動産)이라는 말도 있다. 집을 사봐야 가격은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는 짐[負]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면서 일본 언론들도 앞다퉈 이를 보도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신축 맨션 가격 상승 현상이 도쿄·오사카·후쿠오카 등 대도시권에서 고급 맨션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도시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국지적 버블’인 셈이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요즘 주택 수요자들은 한 달에 15만엔씩 월세를 내는 것보다 무조건 집을 사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대도시 부동산 시장 활황 분위기를 전하며 “오사카시에서 분양된 최고가 10억8000만엔, 평균가 1억5000만엔짜리 49층 타워맨션(주상 복합 아파트) 물량이 모두 팔렸다”며 “최근엔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부동산 관계자의 말을 소개했다. 실제 지난해 분양 맨션 중 1억엔 이상의 ‘고가 맨션’이 차지하는 비율은 8.2%로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신축 고급 맨션 가격이 뛰자, 구축 거래가 덩달아 활발해지는 현상도 발견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만(灣) 지역의 고층 타워맨션 가격은 2019년 12월 이후 2년 동안 평균 20%가량 올랐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동일본 부동산 유통 기구(동일본 레인즈) 자료를 인용해 2021년 수도권 중고 아파트 계약 건수가 전년 대비 11.1% 증가한 3만9812건이라고 전했다. 집계 이래 가장 많은 건수라고 한다.

도쿄 새집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거주 환경 개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큰손’은 이른바 ‘파워 커플’이다. 대기업 등에 종사하는 고소득 맞벌이 부부들이 출근하기에 편하면서도 재택근무·수업 등에도 적합한 새집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준 금리가 마이너스대 인 일본에선 직장이 안정적이거나 고소득을 거둔다면 0%대 장기 주택담보대출이 어렵지 않다. 50~240㎡ 면적 주택을 구매할 경우 주민세 공제 혜택도 볼 수 있다.

반면 최근 부동산업체의 공급 물량은 정점이던 2010년의 3분의 1 수준인 3만3636호에 그친다. 땅값은 물론 인건비, 자재비 등이 급증하는 분위기 속에 건설사들이 공급 물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땅값과 건설 비용이 계속 오르는 만큼 신축 분양가가 떨어질 요인이 적다”며 “수도권의 신축 맨션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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