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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만물상] 가짜 명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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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새벽 2시10분, 샤넬 오픈런 줄 서러 왔습니다. 지금 제 뒤로 텐트들이 있고 줄이 조금씩 더 길어지고 있어요. 원래 ‘신본’하면서 가까운 ‘롯본’도 대기 걸어놓는다는데 저는 신본만 하고 갈 겁니다.” 한 여성이 ‘샤넬 입장까지 10시간 대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띄웠다. 명품 구매족들 사이에서는 ‘신본’ ‘신강’ ‘롯본’ ‘압현’ 같은 말이 통용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롯데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줄인 말이다. 유튜브나 인터넷에는 백화점 명품 매장 문 열자마자 쇼핑하는 ‘오픈런’ 경험담이 넘쳐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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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황에도 값비싼 명품 브랜드가 날개 돋친 듯 팔린 덕에 매출 1조원을 넘긴 백화점이 1년 새 곱절로 늘어 10곳이 됐다. 코로나 ‘보복 소비’에, MZ 세대로 불리는 2030 젊은 층까지 명품 소비에 가세했다. 샤넬은 작년에만 네 차례 값을 올렸다. 하룻밤 새 가방 값이 100만원이나 오르니 하루라도 먼저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샤테크’(샤넬+재테크) 심리까지 더해져 명품 소비가 폭발했다. 한정판 운동화를 사서 되파는 ‘슈테크’에 롤렉스 시계에 투자하는 ‘롤테크’도 등장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 중앙예술원의 한 여대생이 가짜 사치품을 걸치고 부잣집 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21일간 호텔과 공항VIP 라운지 등에서 무전취식한 동영상을 졸업 작품으로 내놨다. 가짜 다이아 반지 끼고 가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고급 요리가 제공되는 경매장에서 비싼 보석도 착용해 보고 공항 VIP 라운지의 공짜 음식도 즐겼다. 명품을 걸치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대접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이성 교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가 급상승한 20대 여성 유튜버가 가짜 명품을 착용하고 나온 것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유튜브 구독자 191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어 370만의 인플루언서였던 이 여성의 유튜브 계정에는 예전 화려한 영상은 보이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와 사과하는 영상만 달랑 떠있다. 빼어난 외모에, 금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데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해 명품만 소비하는 ‘명품 인생’처럼 포장했는데 옷과 목걸이뿐 아니라 보여진 삶 자체가 가짜였다고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명품은 인간의 허영심을 겨냥한 산업이다. 그래서 명품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겨냥한 짝퉁 산업도 근절되지 않는다. 명품 소비가 명품 인생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이 하룻밤 새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강경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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