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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우리는 모두 서로의 상대적 아웃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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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오지윤의 리빙뽀인뜨] 인생의 평균값

조선일보

일러스트=비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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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어떤 독일인 친구는 내게 “한국인들은 평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보기 힘들어. 너는 꼭 아웃라이어가 되도록 해. 한국에 아웃라이어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가 한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떠나는 길에 남긴 충고였다.

어느 사회나 ‘평균선’이 존재한다. ‘아웃라이어’는 그 평균을 어떤 쪽으로든 벗어난 사람들이다. ‘아웃라이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말콤 글래드웰은 이 단어를 비범한 천재로 정의했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통계적으로 벗어난 사람’으로 사용하겠다. 이 단어의 어원이 ‘사용되지 않고 남겨진 채 채석된 돌’이라는 점에서, 담백한 정의가 더 어울린다.

30대 중반이 지난 올해 3월, 나는 영화 연출 대학원에 입학했다. 광고 일을 하고 글을 쓰면서, 연출과 시나리오 공부를 한다. 어릴 때 봤던 ‘순풍산부인과’에서는 뒤늦은 나이에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권오중의 캐릭터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 내가 그 캐릭터가 될 줄은 몰랐다. 대기업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 한 선배는 “지금은 뭘 새로 하기에 늦은 나이야. 다시 생각해”라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인사팀은 “어디로 이직하시는 건지 솔직히 말해 달라”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예상 가능한 통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사방에서 빨간불을 켰다.

학교에 와 보니,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우리보다 열 살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언니와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 30대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을 넘어 자부심이 느껴졌다. 10년 전 만난 독일인 친구에게만큼은 떳떳하게 살고 있는 걸까.

평균값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주변에서 빨간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정작 나에게는 초록불이 켜지기도 한다. 물론 원래 본인이 가려고 했던 길이 평균값에 가깝다면, 모든 게 완벽할 거다. 다만, 굳이 스스로를 정규분포표의 정중앙에 묶어두려 애쓰는 데 시간과 마음을 쓸 필요는 없다. 치명적인 선택도, 치명적인 포기도 없다. 어떤 선배는 내가 퇴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너에겐 너라는 대책이 있잖아”라는 멋진 말을 해주었다. 아웃라이어가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들의 취향과 개성과 결심이 그들의 대책이 되어 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글은 ‘리빙뽀인뜨’의 마지막 글이다. 처음 원고 의뢰를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믿는 내가 조선일보 독자들이 볼 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러다 지면 속 ‘아웃라이어’가 돼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독자들에게 이런 사람도 살고 있다는 걸 전할 기회로 삼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상대적 ‘아웃라이어’니까.

그 결과 60~70대 독자들이 생겼고 그전에는 전혀 접점이 없었을 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편견이 벗겨진 때도 있었고 편견이 공고해진 때도 있었다. 어쨌든 내 인생의 평균값을 벗어나 본 셈이다. 지금까지 리빙뽀인뜨를 읽어준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지윤의 리빙뽀인뜨’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지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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