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1~9급 직원 전원과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지도부가 조 상임위원 사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초유의 집단 반발에 나서자, 조 상임위원이 재차 사의를 밝히고 청와대도 결국 이를 수용한 것이다.
조 상임위원은 선관위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일부 야당과 언론의 비난 공격은 견딜 수 있으나 위원회가 짊어져야 할 편향성 시비와 이로 인해 받을 후배님들의 아픔과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며 "이것으로 저와 관련된 모든 상황이 종료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24일 3년의 임기가 만료된다.
9명인 중앙선관위원 임기는 6년이지만, 1명 뿐인 상임위원은 3년 임기를 마치면 떠나는 게 예외없는 관례였다.
이에 따라 조 상임위원도 당초 관례대로 사의를 표명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선관위 조직 안정성과 선거가 임박한 상황 등을 이유로 이를 반려하면서 "임기말 꼼수 알박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청와대가 조 상임위원 인사강행을 철회한 것은 조 위원의 거취문제가 정쟁화할 경우 선관위의 중립성 자체가 의심받는 것은 물론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민심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간 지지율이 박빙인 상황에서 또다시 '코드인사' '관권선거' 논란이 벌어지면 "여당에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들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캠프 특보 출신인 조 상임위원은 처음 임명 당시부터 정치적 공정성 논란을 빚은 장본인이다.
하지만 이번 조 상임위원 사퇴로 논란이 곧바로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조 위원은 떠나지만 나머지 선관위원 8명중 7명이 친여성향이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원장도 진보성향 법관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다.
만약 대선을 제대로 관리할 의지가 있다면 선관위가 본래의 중립적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더욱 엄정한 감시와 경고가 필요하다.
특히 여당 소속인 전해철 행정안전부장관과 박범계 법무장관도 이번 기회에 중립적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
행안부장관은 선거 주무를 맡고 경찰을 관할하는 사령탑이다. 법무장관은 선거사범을 수사하는 검찰을 지휘한다.
선거를 앞두고 이런 막중한 자리를 여당 중진인 두 의원에게 계속 맡기는 것은 생선을 고양이에 맡기는 격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박 장관은 "저는 법무장관이기에 앞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밝혀 편파성 시비에 휘말린 당사자다.
이런 논란을 없애려면 이제라도 두 장관을 바꿔 정권의 확고한 선거중립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선출된 윤석열 후보에게 이철희 정무수석을 보내 "엄정 선거중립"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이같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지 의문이다.
현재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경우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 또한 작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인 부산 가덕도를 직접 찾아 "가슴이 뛴다. 반드시 실현시키자"고 말해 여당 공약에 힘을 실어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2020년 4·15 총선 직전에는 국민 4명 가족당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언급해 야당 반발을 사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산업통상자원부와 여성가족부는 부처 실무진에 "공약으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어젠다를 내라"며 대선공약 아이디어 발굴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러니 야당에서 "국가 공권력과 예산, 정책을 총동원한 관권선거"라고 집중 성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관권선거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독버섯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출된 독재자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심판을 매수하고 경기 규칙을 고쳐 상대편에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고 했다.
선거 중립은 말로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약속처럼, 정권의 공명선거 의지가 확고하다면 당장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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