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임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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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다. 선거 막바지에 가면 정책이 거의 구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난 14일 인천을 직접 찾아 지역 공약을 발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실제로 (정책을) 실천할 의지와 실력을 갖고 있느냐”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선 국면에서 대선 후보들이 내놓을 공약은 어차피 뻔하니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발언이었다.
실제 이 후보의 발언은 적어도 "정책은 결국 다 비슷하다"는 면에선 사실로 향해가고 있다. 이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내놓고 있는 공약이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두 후보가 지역을 방문할 때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역 공약은 어느 한 후보가 먼저 공약을 발표하면 다른 후보가 그 공약을 받아들인 뒤 내용을 더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표되고 있다. “묻고 더블로 가”라는 영화 ‘타짜’의 명대사가 도박판이 아닌 대선판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지역 공약이다. 지난해 10월 4일 민주당 경선을 치르던 이재명 후보는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 남단~양재IC 지하화 ▶전철 1호선 서울 강북 구간 지하화 등의 서울 공약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석달 뒤인 지난 16일 윤석열 후보는 여기에 더해 경부선(당정~서울역), 경원선(청량리~도봉산), 경인선(구로~인천역)도심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을 공개했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을 최대 300%에서 500%로 상향하는 것도 서로 같다.
부산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해 9월 24일 이 후보는 ▶2030년 부산엑스포 개최 전까지 가덕도 신공항 완공 ▶경부선 구포역~부산진역 지하화 정책을 밝혔다. 그런데 지난 15일 부산을 찾은 윤 후보는 ▶2029년 가덕도 신공항 완공 ▶경부선 화명역~가야차량기지 지하화에 더해 ▶부산·울산·경남 GTX(광역급행철도) 추진 ▶미군 55보급창과 8부두 이전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까지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가 “가덕도 신공항, 기왕에 시작할 거면 화끈하게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시키겠다”고 발언한 걸 놓고 민주당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부산 지역 언론에선 “누가 더 화끈한가”라는 제목이 뽑혔을 정도다.
인천에선 지난 10일 윤 후보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등의 공약을 공식화하고 나흘 뒤인 지난 14일 이 후보가 윤 후보의 공약에 더해 ▶동서평화도로(강화~강원 고성) 등의 건설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이재명·윤석열의 ‘닮음꼴’ 지역 공약 경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정치권에선 대선을 앞두고 각 지역에 ‘선물 보따리’ 공약을 내놓는 걸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달 8일 국민의힘 충청권 시·도당 위원장들이 윤 후보를 만나 ‘대선 충청권 공약 건의문’을 건넨 것처럼 각 지역에서 필요한 공약을 모아 전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각 지역의 민원을 거부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홍준표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충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충남에만 없는 공항 신설 추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앞으로 지방 국내선 공항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가 “충남과 서산이 대구의 핫바지냐”(맹정호 서산시장)고 맹비난을 받은 뒤 발언을 철회한 일도 있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선심성 공약을 내놓기는 쉽지만 실제 실천은 어렵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각 지역을 돌며 공약할 때마다 조(兆) 단위 비용이 왔다 갔다 한다. 당장 경부선(한남대교~양재IC) 지하화만 해도 최소 3조3000억원이 필요하다고, 부산 경부선 지하화에도 1조5500억원이 투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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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 28.7조…안전사고·환경훼손 우려”
게다가 사업성 자체에 의문 부호가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이 빚어졌을 때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보낸 보고서에는 사업비가 28조7000억원에 달하고, 안전사고와 환경훼손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사실상 ‘반대 입장’이 담겼다. 부산 경부선 지하화의 경우도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용역 결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 통합신공항 경북 시민발전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현수막에는 ‘민주당은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갈등 조장 중단하라’고 적혀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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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공약은 자칫 지역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던 영남권 신공항이 2012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된 이후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의 극한 대립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지난해 부산시장 선거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사실상 공식화 되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전북 새만금 신공항 ▶충남 서산 공항 등의 건설 요구도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대선 후보들에게는 각 지역의 공항 건설 요구가 전달되고 있다.
‘묻지마’ 식의 여야 지역 공약 경쟁이 이어지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돈을 쓰겠다는 공약을 하려면 그 돈을 어디서 충당할지에 대한 계획도 있어야 하는데 지출 공약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이미 국가부채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이 선거를 위해 즉흥적인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서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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