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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화층을 위진시대로 분류…중국에서 고구려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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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고구려의 문화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규모 유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발굴 보고서가 최근 중국에서 발간됐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고조선·고구려 유물들이 나타난 문화층(퇴적층)에 다른 국가들의 이름을 붙였다. 보고서를 검토한 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국 당국과 학계가 진행하는 ‘포스트 동북공정’이 사실상 고구려사를 삭제하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진 유적은 지난 1956년 중국 지린성 퉁화시 인근에서 발견된 만발발자(萬發撥子)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명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시대순으로 층층이 발견된 희귀한 사례여서 일찍부터 국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만발발자 유적에서 고구려가 고조선을 문화적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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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중국에서 발간된 만발발자 유적 종합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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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발자 유적 위치.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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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2019년 지린성문물고고연구소와 퉁화시문물관리실이 유적이 발견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종합보고서에는 세형동검과 방단적석묘 등 고조선과 고구려 초기 물질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된 문화층이 서한~양한·위진 시대로 분류됐다. 고조선·고구려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국가들이다. 유물을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고구려는 등장했지만 고조선은 언급되지 않았다. 한국 학자들과 함께 종합보고서를 분석해 지난달 논문집 ‘고조선과 고구려의 만남’을 내놓은 박선미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이 종합보고서를 두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지를 왜곡해 전달했다”고 비판한 이유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난 박 소장은 종합보고서가 중국에서 ‘포스트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다양한 종족들의 문화와 역사를 한족을 중심으로 ‘중국사’라는 커다란 줄거리에 포함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박 소장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두고 “동북공정 이전에는 고구려 시대로 분류됐던 것들이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는 이렇게 위진시대로 분류된다”면서 “2000년대 초반에 진행됐던 동북공정의 결과물들을 전시하거나 출판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2019년 떠났던 만발발자 유적 답사에서도 포스트 동북공정의 여파를 확인했다. 지린성 박물원에 전시된 유물 일부에 ‘한 왕조(Han dynasty)’라는 표지가 달렸던 것이다. 박 소장은 “그것은 고조선의 전형적 세형동검이었다”면서 이전에 답사했던 융지현 박물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청동 단검에 ‘한(부여)’이라고 쓰여 있는데 사실 ‘부여’라고 표시해야 된다”면서 “부여계 고조선계 세형동검에 북방 유목민들이 주로 쓰는 동물 장식을 융합시킨 것인데 한나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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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이 수년 전 중국 지린성 영길현의 한 박물관에서 촬영한 세형동검 사진. 부여계 유물에 한나라 영향을 강조한 ‘한(부여)’이라는 표지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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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소장이 중국 산둥반도 영성의 한 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 고대의 교역을 묘사한 모형에서 고조선 사람은 맨발인 반면, 제나라 사람은 신발과 두건을 착용했다. 박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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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은 한층 세련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박 소장은 수년 전 산둥성 룽청의 한 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을 꺼냈다. 고대의 교역을 묘사한 모형에 등장한 고조선 사람은 맨발이었다. 제나라 사람은 신발과 두건을 착용했다. 박 소장은 “고조선 사람을 미개하게 표현한 것도 문제지만 지역 박물관에도 고조선 전시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에는 고조선 전시가 거의 없는데 정부 차원에서 세련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왜곡이 화제로 떠오를 때마다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스트 동북공정처럼 프레임(논의의 틀)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최신 연구를 반영해 박물관을 개선하고 출판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박 소장은 고대 유물 자체가 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국의 지역 박물관은 무슨 유물이 있어서 이렇게 전시했나요? 우리가 전시했다면 고조선 사람한테 신발을 신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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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촬영한 만발발자 유적 전경. 박선미 한국고중세사연구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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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장이 2019년 길림성 박물원에서 확인한 만발발자 유적 유물에 달린 설명. 한나라(Han dynasty) 유물로 표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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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발자 유적은 어떤 유적인가
만발발자 유적은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 주변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1999년 중국 10대 발굴에, 200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유적에서는 주거지 20기와 수혈 137기, 환호(고대의 해자), 무덤 41기를 비롯해 60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이 가운데는 고조선과 고구려 문화와 유사한 유물도 포함돼 있다. 특히 고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대개석적석묘와 고구려 초기에 해당하는 무기단석광석적묘, 방단적석묘가 같은 지역에서 발견됐다. 고조선의 강역을 두고 여러 학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문화가 한자리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난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박 소장이 유적을 ‘미싱링크(잃어버린 고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국내 학계에서는 유적을 통해서 고구려가 고조선을 문화적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삼국사기 등 현존하는 사료들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멸망했고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건국됐다. 두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사료나 유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박 소장은 “일제시대에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군현으로 인해서 한국에 고대 국가가 성립됐다고 봤다. 스스로 독자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정체됐다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고조선이 멸망하고 그 주민은 어디로 갔겠는가. 고조선 내부의 집단 가운데서 고구려를 세웠던 세력이 나왔을 수도 있다.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은 주민의 연속성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조선과 고구려의 만남’에는 만발발자 유적만으로는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단언하기에 어렵다는 의견들이 담겼다. 유적에서 두 국가의 문화적 요소가 드러나긴 하지만 아직도 채워야 할 빈틈이 많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돌무덤의 경우, 고조선계에서 고구려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사례가 발견됐지만 그 사이에 다른 계열이 섞여서 나타나기도 했다. 박 소장은 “최근에 중국에서 고조선 후기와 고구려 유물이 함께 발견되는 유적들이 꽤 나타났다. 북한에도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중국 당국의 압박으로 인해서 학문의 영역에서까지 폐쇄적 자문화 중심주의가 강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동북공정 이전에는 중국 박물관을 답사하러 가면 중국 학자들이 실물을 꺼내서 만져 보게까지 해줬는데 최근에는 촬영조차 어렵다고 털어놨다. 박 소장은 “문화는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하는데 최근의 중국은 ‘중화로부터 줬다, 황하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만 강조한다. 이것은 결국 이웃한 국가들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침해하게 된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배타적 우월감에 빠져드는 것은 동아시아 평화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예전에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많았다. 학자들이 심양에서, 한국에서 학술회의를 열고 서로의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은 교류가 너무 적어졌다. 정치를 벗어나서 서로가 알지 못한 것들을 교류하고 논의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포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박 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국민께서 고조선과 고구려, 한국 고대사에 대해서 무한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야 학자들도 열심히 연구하죠. 다만 사랑하는 나머지 우리가 최고다, 우리가 최초다, 우리가 제일 좋다는 것만 과도하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만 최고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역사 인식은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설 자리를 스스로 잃을 수 있습니다. 최초, 최고보다는 우리 선조들이 아시아와 세계사의 전개에 어떻게 관여했고 기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거든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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