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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마트서 일은 해도 되고 쇼핑은 안된다니…" 방역패스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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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서 만난 최나래(37)씨는 임신 8개월이다. 최씨는 이날 첫째인 5살 아들에게 먹일 우유와 딸기 등을 사러 마트를 찾았다가 마음이 상했다. 방역패스 시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마트에 들어갈 수 없어서다.

출산 후 수유 기간까지 따져보면 최씨는 올해 안에는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없다. 최씨는 “임신이나 수유 중에는 아무리 아파도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 감기약 한 알 먹지 않고 끙끙 앓으며 버틴다”며 “백신을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맞는 것인데 갑자기 장도 볼 수 없는 죄인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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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서 방역패스 확인을 하는 모습.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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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 10만원 내고 들어가겠다"



같은 날 서울 압구정의 한 백화점 입구에선 70대 노인 고객이 보안 요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QR코드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객이 인쇄한 접종확인서까지 꺼내 보여줬지만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서다. 해당 고객은 “2차까지 맞고 심장 두근거림‧근육통 등 부작용에 3주를 식사도 못 하고 앓아누워 있었는데 백화점 오려고 또 맞으란 거냐”며 “과태료 10만원 내고 들어가면 될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대형마트‧백화점 등 대형점포에 방역패스 의무 적용을 시작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신이나 기저질환, 백신 부작용 등으로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하면 아예 이런 시설에 출입할 수 없어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0일부터 방역패스 의무 적용 대상에 면적 3000㎡ 이상의 마트, 농수산물유통센터, 백화점, 쇼핑몰, 서점 등 대규모 상점이 추가된다.

혼란을 줄이기 위한 일주일의 계도기간을 거쳐 17일부터는 해당 시설은 물론 개인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인은 위반 횟수별로 10만원, 시설은 횟수에 따라서 150만(1회)에서 300만원(2회 이상)의 과태료와 운영중단 10일(1회)에서 3개월(3회), 폐쇄(4회) 조치까지 받을 수 있다.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려면 백신 2차 접종 완료(6개월 이내) 사실을 QR코드나 접종확인서로 인증해야 한다. 혹은 보건소에서 받은 PCR음성확인서(48시간 이내)를 보여줘야 한다.



"생필품도 못 사…기본권 침해"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났거나 임신‧기저질환‧백신 부작용 등으로 인한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기본권 침해”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수지구에 사는 박경순(57)씨는 “미국에선 도시 전체를 봉쇄할 때도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마트 문은 연다”며 “생필품을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10일을 기준으로 607만4000명의 백신 2차 유효기간이 만료된다. 이 중 3차 접종을 했거나 예약한 573만명을 제외한 34만4000명은 방역패스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다. 특히 임신부는 100명 중 99명이 미접종자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임산부(지난달 9일 기준)는 1175명에 불과하다. 전체 임신부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임신부에게 백신은 선택이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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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준 충북대 의대 교수(왼쪽 셋째)가 10일 백신인권행동 회원들과 충북 청주의 대형마트를 찾아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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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패스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서다. 고용 불안 우려 때문이다. 만 18세 이하도 예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방역 때문이라면서 마트에서 일은 해도 되고 쇼핑은 하면 안 된다니 무슨 호랑이 풀 뜯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글이 게재됐다.



방역패스 확인 위한 알바생 채용



방역패스 대상이 면적으로 나뉘면서 편의점이나 기업형슈퍼마켓(SSM), 소규모 점포도 대상이 아니다. 예컨대 이마트에서 장을 볼 수 없어도 이마트24에는 갈 수 있고 롯데마트는 못 가도 롯데슈퍼는 갈 수 있다. 마트와 백화점 측도 괴로운 상황이다. 방역패스로 인한 각종 분쟁을 떠맡아서다. 방역패스로 인한 별도의 인원을 고용하기도 한다. 서울 마포구의 1만㎡(약 3030평) 규모의 마트는 방역패스 여부 확인을 위해 6명의 임시직원(알바생)을 채용했다. 이들은 입구에서 방역패스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를 진행한다. 매장 출입구도 3곳 중 2곳만 운영한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전 국민 84%가 2차를 맞았고 돌파 감염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접종자의 시설 이용을 어렵게 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 어느 백신도 감염예방률이 100%가 아닌 상황에서 돌파 감염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접종완료자가 미접종자보다 감염시 중증이나 사망의 피해를 덜 받는다는 점은 과학적인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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