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검열에 막혀 홍콩서 발간 '송나라의 슬픔' 번역·출간
송나라 남자 도용(陶俑)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중국 역사에서 송(宋·960∼1279)은 문치주의를 실현한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방에서 세력을 키운 거란족과 여진족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1127년 수도를 북쪽 카이펑(開封)에서 남쪽 항저우(杭州)로 옮겼다.
한족(漢族) 중심 시각에서 보자면 송나라는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웠지만, 국방력은 약한 나라였다. 드넓은 영토를 점유한 원나라와 비교하면 분명히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소수민족 투자(土家)족 출신 언론인 샤오젠성(蕭建生)은 글항아리가 펴낸 신간 '송나라의 슬픔'에서 중국 문명의 정점은 원나라나 청나라가 아닌 송나라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에서 2007년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검열로 인해 나오지 못했고, 2009년 홍콩에서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원제는 '중국 문명의 반성'(中國文明的反思)이며, 무삭제 원본을 번역했다.
중국 문명의 흐름을 독자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 현지에서 금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송나라의 정책이 중국 정부가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송나라의 성공 요인으로 중앙집권에 인정(仁政)을 결합한 훌륭한 정치 설계를 꼽는다. 그는 국가 정책을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중앙집권이 황제가 독재를 펼치는 전제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는 "송나라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책을 시행한 왕조였고, 황권 보호 아래 정치 환경이 여유로웠다"며 "사유재산 보호 제도를 제정했고, 상공업과 농업 진흥을 통해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고 분석한다.
심지어 송나라는 현대 공업 문명에 진입하기 직전에 이르렀고, 몽골군에 멸망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서구의 민주·공화·입헌 정치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뒤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저자는 송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 뒤 중국 문명이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진단한다. 황제가 중심이 되는 암흑시대가 이어졌고, 인권도 추락했다고 본다.
근대에도 문명이 전환할 기점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결론에서 중국 정부가 송나라 사례를 참고해 추진해야 할 과제로 공정한 인재 선발 제도 완비,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률과 제도 구축, 자유로운 언론 제도와 개방적인 정책 시행을 제시한다.
그는 또 '상소하여 말하는 자를 죽이지 말라'는 법률이 송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중국도 '인권보장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어 "중국인에게는 인도적 정신, 너그러운 마음, 마땅히 갖춰야 할 도덕과 양심이 부족하다"며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책을 끝맺는다.
"인류 문명의 진보에 발맞춰 중국도 진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총체적 추세이며, 또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역사적 대세다."
조경희·임소연 옮김. 600쪽. 2만9천 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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