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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63)는 현재 빚이 1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가게 매출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는데 임차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만 매달 6500만원씩 나가니 빚만 계속 쌓이고 있다. 당장은 코로나19가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대출로 연명했지만 빚은 빚을 낳았다. A씨는 분당에서 10년 넘게 297㎡(약 90평) 규모 매장을 운영하며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 은행 대출은 막혔고 사채까지 끌어 써야 할 형편으로 몰렸다. 그는 "장사를 접으려 해도 빚을 갚을 수 없어 폐업도 못하고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며 "'기생충' 같은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빚의 늪'에 빠졌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인건비조차 해결할 수 없어 폐업을 선택하면 은행 등 금융사가 대출을 회수하겠다는 압박이 들어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법인으로 운영할 때는 그래도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의 경우 신용등급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 돌려 막기'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887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4.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 1인당 대출 규모는 3억5000만원으로 급여 및 연금 소득자 등을 포함한 비자영업자(9000만원)보다 4배가량 많았다. '대출 돌려 막기'라는 쳇바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부채를 보유한 자영업자는 245만60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6만명은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빚을 냈다. 코로나19가 길어지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 같은 추세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라도 아껴보려고 혼자 근무하며 억지로 버티고 있지만 순이익이 거의 나지 않고 있어 대출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상공인에게 월평균 순이익을 물은 결과 '0원'이라는 응답이 46.3%로 가장 많았다. '손해를 봤다'는 답변은 41.6%로 '이익을 봤다'는 응답(12.1%)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서울 강동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 모씨(49)는 "월 고정비가 5000만원인데 한 달 매출이 1000만원도 안 나오고 있다"며 "고정비를 내기 위해 집이랑 보험을 담보로 한 대출부터 카드론까지 받았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 조차도 여의치 않다.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보상금은 소상공인과 소기업 대상이다. 숙박·음식점업의 경우 평균 매출 10억원 미만일 때 소기업에 해당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 개업을 한 경우에는 정상 영업을 했던 2018~2019년 매출액이 포함된 채로 평균 매출이 산정된다. 이때 현재 피해액이 얼마가 됐든 매출액 기준을 넘으면 소기업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매출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지원 기준을 정하면서 순이익이 없거나 손해를 보는 자영업자는 지푸라기조차도 사라져버린 실정이다. 박씨는 "영업제한은 똑같이 적용받았는데 피해 보상은 한 푼도 못 받았다"며 "피해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개인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대출 상환 압박을 피하려는 꼼수도 등장하고 있다.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업종을 바꿔 사업자등록번호를 유지하면 은행 등 금융사에서 대출 회수 연락을 받지 않고 기존 대출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대출 만기 때 연장 여부 심사를 하는데 심사 때 업종이 변경됐으면 대출에 필요한 여러 요건을 다시 심사하다 보니 연장이 가능한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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