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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대표가 "백신은 주말에 맞으라고!" 직장서 벌어진 신종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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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백신 접종.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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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대표가 ‘백신휴가를 별도로 지급하지 않으니 알아서 백신 맞고 오라’고 하더라. 잔여백신 예약이 잡혀 대표에게 외출을 요청했더니 ‘왜 근무시간에 접종을 하나. 주말에 맞으라’며 소리를 질렀다.”

직원 10명 안팎 규모의 회사에 한지수(가명·여)씨는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이같이 토로했다. 한씨는 “백신휴가는커녕 백신 맞으러 잠시 다녀오겠다 했다가 면담까지 했다”며 “백신 맞고 유급휴가 쓰는 지인들과 비교돼 자괴감이 든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3차 접종 의무화하는데…직장선 ‘백신 차별·갑질’



정부가 ‘부스터샷’ 등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지만, 기업 등 현장에선 백신을 둘러싼 차별과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달 3일부터 10일까지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2021년 4차)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 92.0%가 백신 예방 접종을 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유급 백신휴가(1~2일)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는 52.2%인 것으로 집계됐다. 일터의 약자인 ▶여성(60.8%) ▶비정규직(59.1%) ▶5인 미만(61.9%) ▶5~30인 미만(65.1%) ▶150만원 미만(62.8%)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60.3%) 백신휴가를 쓰지 못한 비율이 높았다. 유급 백신휴가(2일)를 의무화해 휴가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동의한다’는 응답자가 76.0%에 달했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정부의 백신 접종자에 대한 휴가 부여 방안이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에만 머물러 있다”며 “기업이 임의로 결정해 백신휴가를 부여하거나 연차유급휴가 또는 무급휴가 형태로 사용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3차 접종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백신휴가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규정하고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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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식당에 붙어있는 방역패스 안내문.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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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미접종, 징계·해고 등의 귀책사유 될까



직장갑질119 측은 백신 미접종이나 밀접접촉자 분류에 따른 사내 불이익 문의도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백신 미접종자에게 회사 내에서 해고·징계 등 불이익을 주는 것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가 65.3%였다”며 “불이익에 반대하는 응답은 연령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백신 후유증이 심했다는 A씨는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는데 얼마 전 ‘2차 접종 후 6개월 이내에 3차 접종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 출입할 수 없다’는 공지가 올라왔다”고 했다. A씨는 “후유증이 두려운데 백신을 맞지 않으면 해고되는 건가”라고 물었다.

직장인 B씨는 “직장 동료가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것으로 확인돼 격리됐다”며 “그런데 회사 대표가 그 직원에게 ‘조심성이 없다’며 죄인 취급하는가 하면 ‘코로나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피해를 배상하게 하겠다’고 했다”고 폭로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회사가 개인에게 징계·정직·해고와 같은 조처를 하려면 개인의 귀책사유가 필요하다”면서 “백신 미접종을 업무와 관련한 잘못이라고 보긴 어려워 노동법상 원칙적으로 불이익을 주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이어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조치를 받았다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아직 백신 미접종과 관련해선 접수된 게 없어 실제 어떤 판단이 나올지 확답을 할 순 없다”고 했다. 그는 “백신패스 시행에 따라 사생활자유·행복추구권 등 헌법적 가치와 감염병예방법 사이에서 인권 보장 논란이 불거지는데 적어도 생계가 걸린 직장에서만큼은 노동권 침해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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