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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 스위스, 중세마을 그뤼에르로 들어간 에일리언과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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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알기거(HR Giger)박물관과 티베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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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린 그뤼에르 마을 풍경.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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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12월 그뤼에르 마을은 눈 내린 겨울 왕국이 됐다. 성과 마을 주변은 눈으로 둘러싸여 있고 며칠째 계속 내리는 눈으로 마치 고립되어 세상과 단절된 느낌마저 준다. 눈내린 성과 마을엔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마법에 걸려 모든 게 멈추진 않았을까? 멀리서 눈 내린 성을 바라보며 각자의 판타지를 그려보게 되는 겨울, 이 겨울 그뤼에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진다.

중세 13세기에 세워진 그뤼에르 마을에 도착하면 울퉁불퉁한 돌길을 마주하게 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의 중심에는 분수대가 있고 양쪽으로 오래된 집들이 한 건물처럼 늘어서 있다. 이 오래된 집들의 아래층엔 여느 관광지처럼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 호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고 위층엔 사람들이 산다. 100년을 훌쩍 넘은 건물들이라 내부는 협소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덕분에 여기 그뤼에르는 죽지 않고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마을에는 일 년 내내 다양한 행사로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추운 겨울 12월에도 언덕 위 마을까지 사람들을 올라오게 하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있다. 이때가 되면 스위스 전역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올해 그뤼에르 마을 행사에는 2주 연속 주말 동안 40여 개의 수제품업자들이 참가할 예정이며, 백신 패스 없이 마켓을 다녀갈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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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통나무집 판매대가 늘어선 크리스마스 마켓.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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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성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영화 ‘에일리언’의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는 에치알 기거(HR Giger) 박물관을 만난다. 중세의 성과 20세기를 대표하는 판타지 영화의 조형물 전시관! 이 오묘한 조화는 스위스 태생의 예술가이자 크리처 디자이너인 한스 루에디 기거(Hans Ruedi Giger)가 자신의 작품을 그뤼에르성에 전시한 이후 이 곳이 마음에 들어 성 아래쪽에 있는 생제르맹성(현재의 박물관)을 구입해서 1998년에 박물관을 연 덕분이다.

박물관 위층에는 기거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기거가 기획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The Spell’과 ‘Passages’ 시리즈와 같은 작품 전시와 ‘에일리언 1, 3’ ‘듄’ 등 기거가 참여한 영화 디자인 대부분이 온전하게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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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알 기거 박물관.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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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함께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곳이 맞은 편에 있는 에치알 기거바 (HR Giger Bar)다.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여느 바와 다름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동굴처럼 또는 거대한 에일리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실내 인테리어가 시선을 압도한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체가 기거만의 독특한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거대한 창조물로, 뼈의 구조를 기조로 해서 다양하게 변형된 장식물들로 실내를 채우고 있다. 이러한 생체역학적 분위기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천장과 벽장식에서 볼 수 있다. 그가 태어난 도시 쿠어(Chur)에도 같은 형태의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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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거 바 내부. © Union fribourgeoise du Touri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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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거 박물관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또 다른 이색적인 곳은 티베트 박물관이다. 알랑 보르디에(Alain Bordier)가 티베트와 인도 북부, 네팔 등 히말라야 지역에서 수집한 6세기에서 18세기의 불상과 불화, 성물 350여 점을 모아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은 애초에 사제들의 주거지와 생제르망 성에 부속된 생조셉 성당(chapelle, 소성당)이었다가 19세기 말에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개인 소유를 거쳐 지금의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소성당은 그 자체로 종교적 상징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 여기에 예수, 마리아, 조셉 외에 힐러이자 양 떼의 보호자로 여겨지는 성프란치스코를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 한쪽 벽에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동시대 티베트 성자 밀라레파처럼 새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가톨릭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 또다른 종교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자리를 잡고 함께 공존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두 종교가 말하는 ‘사랑’과 ‘자비’는 추운 겨울 우리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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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를 만들고 있는 티베트 승려들.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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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는 오래된 마을이나 그 안에 현대적 상업작품의 필두인 할리우드 영화 조형물 전시관을 들여다 놓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상징 장소에 타 종교의 박물관을 세우게 했다. 성과 마을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들의 문만은 활짝 열려있고, 어제의 것을 잘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뤼에르성과 마을은 이 지역, 더 나가서 프리부흐 주 전체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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