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여성가족정책센터, 이주여성의 창업사례 연구 보고서 발간
"외국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차별 당하는 이주여성들 (CG) |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술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야, 맛있는 것 좀 내와'라고 한다든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한다고 느꼈어요…"
대전여성가족정책센터가 최근 발간한 '대전지역 이주여성의 창업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 국적 크리스탈 씨는 연구자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장사하며 느낀 어려움을 이같이 토로했다.
1999년 남편과 결혼 후 한국에 온 크리스탈 씨는 영어 강사로 취업했지만 아이 셋을 돌보면서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2017년 식당을 열기로 했다.
번화가 내 푸드코트 같은 여러 매장이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주변 상인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 1년여 만에 장사를 접었다.
외국인들이 음식을 먹으며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서 떠드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차가운 눈빛이 쏟아졌고, 이 같은 분위기에 자국민들이 더는 찾지 않게 되면서 결국 폐업하게 됐다.
남편과 상의해 필리핀인들을 대상으로 식료품을 취급하는 가게 겸 식당을 하기로 하고 이듬해 5월 대전역 인근에 문을 열었지만,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또다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크리스탈 씨는 "지나가다 가게에 불쑥 들어와 '여기가 어디냐?'하고 묻거나, '야, 맛있는 것 좀 내와 봐'하고 술 취한 사람들이 반말하기도 했다"며 "어차피 필리핀 사람들은 그냥 전화해서 연락하니까, 아예 문을 닫고 장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에서라기보다는 외국인 여성이 혼자 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문화가구 30만 시대…자녀차별·사회관계는 악화(CG) |
2013년 결혼 후 한국에 온 베트남 국적의 김다희 씨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임대료가 싸게 나온 가게들이 생기면서 베트남 음식 전문점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옷과 화장품 등을 페이스북으로 중개 판매해 어렵게 사업자금을 마련하고 손수 페인트도 칠하는 등 인테리어를 해 비용을 줄였지만, 정작 아는 사람을 믿고 한 조리도구 구매 계약에서 금전적으로 손해를 봤다.
주변 상인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시작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식당 운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네팔 출신의 쿠마리 씨는 2017년 2월 남편과 함께 대전 원도심 번화가에 네팔 음식점을 열어 운영해오고 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손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처리해야 했던 행정 절차였다.
쿠마리 씨는 "관공서 같은 데서 영어는 안되니까 다 한국어로 해야 하는데, 거래명세서 같은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서 그걸 받아야 하는지 모르니까…처음엔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전지역 결혼이민자는 6천516명(2019년 기준)으로 이 가운데 여성(5천665명)이 남성(861명)의 6.6배에 달한다.
지역 다문화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이주여성이 종사하는 업종은 주로 식당, 화장품 방문 판매, 보험 판매 등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실과 의류 판매 등도 있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첫 사업 시작은 주로 출신국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연구책임자인 류유선 박사는 "이주여성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은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며 "외국인과 여성이라는 지위가 교차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인종적·젠더적 차별을 겪을 뿐만 아니라 사적영역에서까지 자녀 양육과 집안일,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받으며 한국 사회의 가부장 문화로 인한 가사노동의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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