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 '내 은밀한 영상'…단 10%만 실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불법촬영 보고서]①나체·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합의 종용도

가해자 4명중 1명 '아는사람'…"불법촬영 엄하게 처벌해야"

[편집자주]지난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줬던 'n번방 사건' 이후 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어떤 판결을 내리고 있을까. 뉴스1이 '불법촬영 범죄사건' 판결문 261건을 분석했다.

뉴스1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이밝음 기자 =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찍힌 사진이 있다는 것을.

A씨는 지난해 8월 다시 만나자는 전 남자친구 B씨의 말을 거절했다. 그러자 섬뜩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뭐 보여주면 너 아무 말도 못할 텐데" "널 끝낼 수 있다"

B씨가 말한 '뭐'란 A씨의 신체 사진이었다. A씨가 잠든 사이에 B씨가 몰래 찍은 불법 촬영물이다. B씨는 A씨의 친구들에게 사진을 유포해 전 여자친구의 인생을 '끝내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수사기관에 입건된 B씨는 혐의가 인정돼 기소됐다. 법원은 피고인이 합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연인으로 지내다 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별할 때 '각오'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C씨는 전 남자친구 D씨의 연락을 아예 받지 않았다. 그러자 D씨는 C씨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끔찍한 발언을 쏟아냈다.

"게임 시작했다" "C씨와의 성관계 영상을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 뿌리겠다" "잘못했을 때 각오는 했어야지"

D씨는 실제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영상을 전송했고, 보름 뒤 영상 내용을 캡처해 C씨에게 보냈다.

C씨는 범죄자로 돌변한 전 남자친구가 처벌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법원은 '집행 유예'를 결정했다. D씨가 불특정 다수에게 촬영물을 유출하지 않았고 반성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뉴스1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 촬영물 더욱 노골적

뉴스1은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를 통해 지난 1월1일~10월31일 서울 소재 지방법원 5곳의 불법촬영 범죄 관련 선고 261건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가해자 4명 중 1명은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다. 판결문 261건 중 73건(28%)의 피고인은 안면이 있는 피해자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163건(62.5%)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28건(10.6%)은 관계가 명시되지 않았고, 10건은 아는 사이와 모르는 사이 모두를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는 사이인 경우 가해자는 대부분 연인이나 전 연인이었다. 직장 선후배, 친구, 지인이 불법촬영 범죄자인 사건도 있다. 함께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나 사무실에서 매일 만나는 여직원들도 몰래 찍히는 등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다.

가까운 사람이 범죄자로 돌변하는 사례는 관련 상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0년 상담통계 및 동향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카메라이용촬영 범죄 관련 상담건수 50건 중 절반에 가까운 22건(44%)이 친밀한 관계에 의한 피해였다.

가장 편안하다고 믿었던 순간이 악몽으로 변한 현실에 피해자는 고통을 호소한다. 특히 ‘아는 사람’의 불법 촬영물은 더욱 노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었던 사건 73건 가운데 50건(68%)의 불법촬영물에서 피해자는 나체 상태이거나 성관계를 하는 중이었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제일 편안할 수 있는 공간에서 누군가 찍고, 친밀했던 사람이 나를 성적 대상화해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후에도 불안과 트라우마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뉴스1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명 중 1명만 '실형'

올해 1월1일부터 불법촬영에 관한 대법원의 양형기준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실형 판결은 적은 상황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는 촬영·반포의 경우 감경을 해도 최소 징역 4월을 선고해야 한다.

그러나 261건의 범죄 중 징역형은 33건(12.6%)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동종범죄를 수차례 저질렀거나, 주거침입이나 준강간 등 다른 범죄를 함께 저지렀을 때다.

선고 중에는 집행유예가 148건(56.7%)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 78건(29.9%)이 뒤를 이었다. 선고유예도 2건이었다.

불법촬영물은 명확한 증거가 있는 탓에 합의가 가해자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피해자와 합의를 했거나 합의를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노리고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끊임 없이 연락한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아는 사이의 경우 가해자들이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며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자신의 회사, 직장, 학교, 개인정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엄한 처벌을 요구하면 보복 감정을 키울까봐 합의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불법촬영 범죄는 단순 개인의 법익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기계적인 감형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카메라 기술의 발달하고 온라인 공간이 확장되면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와 촬영·유포 등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법부에서 불법 촬영 범죄에 엄하게 처벌하는 사례가 쌓여야 사회적으로도 중한 범죄라고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training@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