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의 문으로·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기러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 빵 좋아하세요? 단팥빵과 모란 = 구효서 지음.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단팥빵을 먹겠다'는 엉뚱한 목표로 전국을 순례하는 미르와 경희 모녀를 중심으로 시간을 넘나든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살던 모녀가 한국 땅을 밟은 이유는 단 하나다. 엄마 경희의 기억 속 단팥빵 맛을 찾기 위해서다.
모녀가 대전, 대구, 부산, 전주를 오르내리다 다다른 곳은 목포. 그러나 전설의 단팥빵은 제빵사가 자취를 감추면서 언제 부활할지 모르는 영구결번 상태다.
등단 이후 30여 년간 묵직한 필체를 선보인 작가가 새로운 필치로 써 내려간 소설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빵이 너무 좋아 눈치가 보일 정도"라고 고백하며 빵 먹듯 작품을 써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문학수첩. 288쪽. 1만3천 원.
▲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지음.
1989년 처음 출간된 최승자 시인의 첫 산문집이 32년 만에 다시 나왔다. 3부에 걸쳐 25편을 엮은 기존 책에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쓴 산문을 4부로 더해 증보한 개정판이다. 2016년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이후 5년 만의 기별이기도 하다.
등단 이전인 1976년 쓴 산문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을 시작으로 2013년 글 '신비주의적 꿈들'까지 일기, 고백, 논평 같은 다채로운 글들이 나열된다.
2010년 쓴 '최근의 한 10여 년'에서 시인은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중 발병한 조현병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퇴원을 반복했다며 병과 싸우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곤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자문한다.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는 나"라는 무심한 듯한 자답에 "슬픈 설화 형식의 짧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얹는다.
난다. 192쪽. 1만3천 원.
▲ 상아의 문으로 = 구병모 지음.
2009년 등단 이후 꾸준히 신작을 발표한 작가의 새 장편 소설이다. 계간 '문학과 사회'에 연재한 소설을 묶어 냈다.
책 제목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에 등장하는 '상아로 만든 문'과 '뿔로 만든 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상아의 문으로 흘러든 꿈들은 거짓된 것이고, 뿔의 문으로는 진실한 것만 통과할 수 있다.
상아의 문을 지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나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게 된다.
작가의 문장은 꿈과 현실, 너와 나의 구분을 지운다. 일상과 질서가 파괴된 세상에서 비연속적으로 단절된 순간을 만들어낸다.
문학과지성사. 223쪽. 1만4천 원.
▲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 마리즈 콩데 지음. 백선희 옮김.
2018년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아카데미문학상을 받은 마리즈 콩데의 최신작이다.
2015년 '음식과 기적' 이후 절필 결심을 한 작가가 그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등 일련의 프랑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결심을 뒤집고 집필한 2017년 작품이다.
아프리카 말리를 거쳐 프랑스 본토로 향하는 과들루프의 흑인 쌍둥이 남매 이반과 이바나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인종차별과 과거 식민주의 폐해로 오늘까지 계속되는 불평등과 편견을 그렸다.
피부색과 겉모습만으로 배척되고 무시당한 한 인간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치밀한 서사로 구현했다.
2017년 당시 여든 살의 노작가는 퇴행성 질환으로 책상에 앉아 집필하기 어려웠지만 작가적 열망으로 자신의 작품 영문판 번역가인 남편에게 구술해 이야기를 완성했다.
문학동네. 368쪽. 1만5천500원.
▲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퓰리처상 수상 시집 '미국의 원시'를 비롯해 메리 올리버의 시 124편을 수록한 전미도서상 수상 시선집이다.
엄선한 시를 연대별로 총망라해 시인의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중 김연수 작가가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인용하면서 국내에서 유명해진 시 '기러기'가 눈에 띈다. 미국에서도 애송된 시인의 대표작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9·11 테러 8주년 추모식에서 낭독했다.
생의 대부분을 매사추세츠주에서 보낸 시인은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야생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시어로 옮겼다.
시집에는 자연예찬적 시뿐 아니라 그가 사랑한 예술가를 다룬 시, 할머니와 엄마 등 가족에 대한 시까지 다채롭게 담겼다.
마음산책. 380쪽. 1만6천800원.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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