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법원 법감정 괴리 왜
서울고법, 양모 26일 항소심 선고
1심 무기징역...檢 항소심도 사형구형
“무기징역도 가볍다” 사회적 분노
판사 “법체계 고려땐 과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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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한 생후 16개월 아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인이 사건’ 양모의 항소심 선고가 26일 열린다. 무기징역도 가벼운 형벌이라며 사형을 요구하는 여론이 있지만, 법원 내에선 형벌 체계를 고려할 때 형량을 올리는 게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
2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성수제)는 26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 장모씨와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양부 안모씨 항소심 선고기일을 연다. 1심은 장씨에게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안씨에겐 학대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실제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사형을 구형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감안한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분노와 법원 양형 사이의 괴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양형을 고민하는 판사들의 생각은 복잡하다. 검찰이 구형한 사형은 물론, 무기징역도 과한 형벌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동학대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던 만큼 분명히 엄단해야 할 중범죄가 맞지만 다른 범죄와의 형벌 체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안의 심각성은 십분 공감하지만 전체 법 체계를 생각하면 무기징역이 합당한 것인지도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건과의 형평도 문제지만, 이렇게 되면 계속 형량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과연 헌법이나 형법상 책임원칙에 맞는 양형이 이뤄지고 있는지 판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이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 범죄 중에서 여러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계획 살인이 가장 중한 범죄로 다뤄진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무기징역이 가장 강력한 형벌인 상황에서 전체적인 선고 체계를 생각하지 않을 경우 죄질과 실제 양형이 뒤엉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막상 분노하던 시민들도, 실제 사건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사실관계를 따지면 법원과의 눈높이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료를 보면 이러한 부분이 통계로도 확인된다. 2018년 1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후 올해 1월말까지 약 3년간 ‘살인범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3만7020명이다. 이들 중 프로그램 체험 전 집행유예를 선택한 체험자는 3896명(10.5%)였는데, 체험 후에는 1만3667명(36.9%)이 집행유예를 선택했다. 반대로 무기징역을 선택한 사람은 체험 전 2645명(7.1%)에서 체험 후 604명(1.6%)으로 줄었다. 프로그램 체험 전 사건개요만 보고 극단적 양형을 선택했던 체험자들이 실제 양형을 고민한 후 턱없이 높은 양형을 선택하지 않았던 셈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시민들 입장에선 언론을 통해 특징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 기록을 보고 양형을 판단하는 것과 차이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가 지난 10월 연구용역을 공모한 국민참여재판 관련 제안서에 담긴 통계를 살펴봐도 사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시민들과 판사들 사이 의견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평결 및 양형의견과 판결 및 법관양형이 불일치한 사례 분석을 통한 국민참여재판제도 모색’ 제안요청서를 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민참여재판에서 시민 배심원 평결과 실제 판결 유무죄 판단이 일치하지 않은 건 전체 6.5%였다. 양형의견에서 +1~-1년을 넘는 차이가 있던 사례는 전체의 10.3%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장씨를 기소했던 검찰은 올해 1월 방송 보도 등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고 사회적 공분이 확산된 후 1심 첫 재판에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살인죄를 주된 공소사실로, 아동학대치사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무기징역이 약했으면 약했지 과한 게 절대 아니다”라며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자기 생명을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인이가 느꼈던 고통과 공포를 생각하면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사형을 선고하기엔 다른 사건과 비교를 한다면 형평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이나 집회 등을 통해 실제 법원의 판단과 시민들의 법감정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재판 실무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외면할 수는 없어 보인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써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왜 이런 판결을 했는지는 물론, 양형 부분도 정형화 된 표현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적으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시민 법감정과 판사들의 생각 차이는 사법신뢰와도 연결된다”며 “결국 재판 자체에 대한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대용·박상현 기자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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