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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자마자 청년 세종이 병석에서도 탐독한 이유 짐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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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수간’ 6년만에 번역한 유미정 박사

‘대문호 구양수-소동파 쓴 손편지 모음’

광주 인문연구원 동고송 29일 ‘출간례’


한겨레

인문연구원 동고송 사무국장 유미정 박사.


“조선의 세종이 탐독한 책입니다. 청년 세종이 병석에서도 놓지 않고 천백번을 읽었다고들 하지요.” <중국의 대문호 구양수와 소동파의 편지글-구소수간(歐蘇手簡)>(글통 펴냄)을 최근 번역해낸 유미정(55·인문연구원 동고송 사무국장) 박사는 26일 “태종이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친 아들을 위해 서책을 다 치우게 했는데 오직 단 한권, <구소수간>만 곁에 뒀다”고 말했다.

<구소수간>은 중국의 대문호 구양수와 소동파가 쓴 손편지(수간)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원나라 때 두인걸이 구양수의 편지 125편과 소동파의 편지 152편 등 277편을 수록해 편집했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와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일본까지 전해졌다. 유 박사는 “당시 문인 학자라면 대부분 그랬듯이 두 사람의 문장에 심취했던 세종은 인생 역정의 희로애락이 스민 <구소수간>에 매료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간이란 비교적 짧은 편지로, 척독·간찰·서간·서신으로도 불린다. 구양수는 당·송 시기 글을 가장 잘 쓴 8명을 일컫는 ‘당송 팔대가’ 중에서 송대의 선구자로 꼽힌다. 과거시험 총책임자였던 구양수는 논술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은, “서예와 그림은 물론 예술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일가를 이룬” 절세의 대문호 소동파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유 박사는 “두 사람은 물 흐르는 듯 시원스럽게 글을 썼고, 짧게 쓴 문장이더라도 뜻과 이치를 담았다”고 말했다. 임진·병자 양란 이후 조선 문인들은 두 사람의 글을 읽고 “글의 간결함과 호방함 그리고 그 서정적 깊이 등을 선호”하며 조선의 간찰 문학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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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수간-세종이 애독한 책> 표지. 글통 제공


두 사람 모두 정쟁의 화를 피하지 못하고 필화사건에 연루돼 파란만장한 유배의 길을 걸었다. 소동파는 첫 유배지에서 ‘동파’라는 호를 짓고 직접 농부가 돼 땅을 일구기도 했다. 소동파는 수도에서 천하의 명사들과 교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가는 길은 왜 이다지도 험난하여 거처할 곳도 없는가?”라고 탄식했다. 하지만 유 박사는 “소동파의 자유로운 정신은 삶의 고초를 넘어 해학과 달관의 경지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천년 세월을 간직한 고전 <구소수간>이지만, 그간 국내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었다. 영어교사로서 교사모임에서 철학과 한문을 공부하던 유 박사는 2014년 책을 처음 보고 끌려 1년 뒤 전남대 대학원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에 진학해 연구를 시작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미국까지 가서 <구소수간>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보낸 편지에 바로 답한 편지를 찾지 못해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다. 하지만 구양수의 편지에서 나오는 ‘평산’이 ‘평평한 산’이 아니라 그의 정자 ‘평산당’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다른 작품을 보고 알아내기도 했다”고 그간의 애환을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구양수·소동파에 대한 논문 3편도 발표했다.

인문연구원 동고송은 29일 오후 6시 광주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서 ‘구수소간 출간례’를 연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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