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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문화 이면] 소나무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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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나름대로 분주했다.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생겨 새로 살 집을 보러 다녔기 때문이다.

평소 재테크에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일만 했기 때문에 부동산이 요동을 칠 때도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막상 집을 옮기려 하니 큰일이구나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역이 파주인데 GTX 때문에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사둘걸.

물론 내가 사는 집도 오르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정부가 대출을 막아서 은행이 보통 깐깐하게 구는 게 아니다. 모아둔 돈으로는 부족해 집 고치는 비용과 취득세 등을 고려하면 취득가의 절반 정도는 대출이 나와줘야 하는데 30%도 대출이 안 나온다.

그러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년 봄엔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인지라 예산이 빠듯하니 난감했다. 결국엔 영끌족의 로드맵을 그리고서야 겨우 계약의 전망이 보였다.

이렇게 무리하게 된 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을 통해 열 채가 넘는 집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뭔가가 부족했다. 집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막연히 오래 거주하면서 장년과 노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집이었으면 했다. 책이 너무 많아 이왕이면 지하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숲과 붙어 있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싶었다.

이런 기준으로 다니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집집마다 소나무가 없는 집이 없었다. 어떤 집은 소나무밖에 없었고, 다른 수종이 있더라도 항상 중심은 소나무였다. 그런 집들을 가리키며 부동산 사장님은 조경에만 수억 원이 들어갔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데 내 눈엔 그것이 너무 획일적으로 보였다. 나무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소나무만 죽도록 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나무가 보기에 우람하고, 겨울에도 푸르고, 건강에도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도배를 할 건 아니지 싶었다.

게다가 나에겐 소나무가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왠지 회장님처럼 어려운 분이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구불구불한 모습도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업자가 택지를 쪼개고 박스형으로 용적률을 높여 한창 분양 중인 신축 집들은 더 심했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습에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소나무까지 좌우대칭으로 늘어선 모습을 보자니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나무 말고도 단풍이 예쁘고 잎이 떨어진 가지의 모양이 아름다운 나무도 많다. 느티나무, 팽나무는 바라지도 않지만 밤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사과나무 등 그 많은 유실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외국인은 한국의 아파트를 보면 기가 질린다고 한다. "살기 위해 지은 기계 같다"는 표현에서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파트를 벗어나 주택을 지으면서도 남들이 하는 건 똑같이 따라하는 이 획일적 모방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문화를 주도하는 조경업계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무에 관심이나 지식이 부족한 수요자들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집집마다 마당에 잔디를 까는 것도 그렇다. 왜 전통 한옥의 마당처럼 디자인된 곳은 없을까, 돌을 깔고 화단으로만 장식한 정원은 왜 없을까 등의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결같은 소나무와 잔디들 때문에 건축의 다채로움이 묻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집은 정원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부가 우리 삶에 맞고 편안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계약한 집은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지은 지 15년이 되어 집이 숙성된 기운이 느껴졌다. 윤이 나게 잘 닦인 나무로 된 마루와 방문, 뒷마당이 숲과 연결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처음 집을 지은 분이 계속 살고 있다는 점도 좋았고, 그 집의 세월을 내가 이어간다는 느낌도 좋았다.

물론 이 집 잔디 마당에도 소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다행히 내 키 정도로 자그마해 위압적이진 않다. 그 외에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사시나무, 목련나무가 있다. 다행이다. 이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맛이 좋을 것이다.

매일경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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