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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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또다시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천연가스와 석탄 등 에너지 관련 원자재 수요 급증이 유가 상승을 부추기며 연말까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이 세계 경제를 '슬로우플레이션'(Slowflation·느린 성장과 물가상승)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0.2% 오른 배럴당 82.4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3거래일 연속 오르며 2014년 10월 21일(82.81달러)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만 약 70%가 올랐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에너지 대란’ 때문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 급증에 전력난 해소에 사활을 건 중국이 석탄 사재기에 나서며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체재인 원유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난방 수요까지 늘고 있지만 산유국은 공급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유럽의 풍력 발전량이 줄면서 각국은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문제는 유럽 천연가스 사용량의 절반가량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공급을 늘리지 않는 데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영국과 유럽 가스 가격이 최대 18% 폭등했다고 보도했다.
외환중개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애널리스트는 미 CNBC 방송에 “천연가스·석탄·전기 부족은 원유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늘어난) 수요에 발맞춰 OPEC+나 미국 등 산유국이 추가 생산에 나서지 않기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유가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실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을 포함한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원유 공급량은 예상치에 못 미치고 있다. OPEC+는 지난 9월 생산목표를 일일 40만 배럴 더 늘린 뒤 10월과 11월에는 추가로 일일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앙골라와 나이지리아 등에서 투자 부족과 수리작업 탓에 증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 산유국들 역시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서 미 백악관까지 나서 OPEC에 증산 압박을 할 정도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원유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OPEC 회원국들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며 “에너지 공급의 물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노력에도 북반구에 겨울이 다가오며 난방수요까지 늘어나며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유가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투자자들은 원유 가격이 12월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전했다.
원자재 에너지와 금속, 곡물 등 23개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 지수도 이날 526.40을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연초와 비교하면 70% 이상 올랐다.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문제는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슬로우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슬로우플레이션은 더딘 성장(slow growth)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하강 속도가 더디다.
루이지 스페렌자 BNP파리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T에 “슬로우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동반되는 것을 말한다”며 “현재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슬로우플레이션에 가깝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2005년·2007~2008년, 2010년~2011년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등장한 슬로우플레이션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의 여파가 심해지면 ‘슬로우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BoA는 “물가가 오르고 이에 임금이 상승하는 등 인플레이션의 여파가 더욱 커질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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