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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물가·세수 전망 '헛다리', 정책은 '갈팡질팡'... 서민 곡소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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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예측 틀리고 세수오차도 역대 최대
가계부채 관리하겠다며 전세대출 막았다가 풀어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응에 정치권 눈치 보기 탓
한국일보

15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영업부에서 대출 상담창구 안내문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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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문재인 정부의 허술한 경제 전망과 오락가락 경제 정책이 시장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못 하니 '헛다리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원칙 없이 시행과 취소가 반복돼 애먼 피해자만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정책 난맥상은 공무원들의 고질적인 정치권 눈치 보기와 안이한 대응 등이 겹친 결과다. 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이 이미 대선 국면에 접어든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소신 있게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물가 반년째 헛다리 예측... 세수도 역대 최대 오차


15일 시장과 경제학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경제 상황 관리 능력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물가 예측과 세수 추계가 크게 어긋나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 6월 올 3·4분기 물가상승률이 모두 1%대 후반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지만, 물가는 6개월 이상 2%대를 웃돌고 있다. 이달에는 10년 만에 3%에 달할 전망이다.

물가 상승이 장기화될 조짐이 여러 차례 보였음에도 정부의 관리는 땜질식 처방에 그쳤다. 농수산물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카드는 수입 곡물에 대한 할당관세 폐지, 계란 수입 확대 등 제한적인 조치가 다였다. 물가가 하반기에는 잡힐 것이라는 '안일한 전망'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게 한 것이다. 9월을 넘어서도 물가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동결'과 같은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고 있다.

역대 최대로 기록될 올해 세수오차도 정부의 나라 가계부 관리 능력을 의심케 한다. 지난 6월 정부는 2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올해 초과 세수를 31조5,000억 원으로 내다봤다. 본예산 편성 대비 오차율은 11.2%로,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오차율(9.5%·2018년)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그러나 8월까지 거둬들인 초과 세수가 55조7,000억 원까지 늘면서 오차율은 이보다 더 커질 게 확실시된다. 세수 추계 오차는 필요한 곳에 제때 예산을 쓰지 못하는 등 재정 운용 효율성을 크게 떨어트린다.

홍춘욱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세수 추계가 좀 더 정확했다면 코로나19 방역·손실 지원 등에 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무가내식 규제에 애먼 피해자 양산... "정치권 눈치 보기 거리 둬야"


오락가락하는 정부 경제 정책은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 정책 방향이 정치권 입김에 바뀐 사례는 많았지만, '대출 절벽' 사태가 불러온 대출 규제 정책 선회는 애꿎은 서민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크다.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지난 8월부터 각 금융사에 대출 문턱을 높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각 금융사들은 각종 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한도를 줄여야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필요한 돈을 제때 구하지 못해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을 빚는 ‘대출 난민’이 속출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5만 명 넘는 입주자가 집단대출 중단 대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여론 악화에 당청이 대출 규제를 완화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금융위원회는 "전세대출은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겠다"며 규제 기조에서 크게 후퇴했다. 이 조치로 서민 차주 등의 대출 숨통은 일단 트이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고려치 않고 막무가내식 규제만 밀어붙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미 정부 규제로 잔금을 치르지 못해 경제적 손실을 보거나 2금융, 사채 등을 써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하는 등 피해 사례도 상당 부분 발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전세대출을 무리하게 총량규제에 포함시켰다가 반발이 속출하니 다시 풀어줬다”며 “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을 누가 믿겠냐”고 말했다.

이 같은 경제정책 난맥상은 정권 말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응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표심 눈치 보기가 맞물린 결과다. 금융위만 해도 고승범 위원장 취임 이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방침에 따라 가계부채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3년 이상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 역시 당청 입김에 너무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 교수는 “잘못된 경제 예측과 오락가락 경제정책은 국민들의 삶과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옳다는 신념이나 눈치 보기가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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