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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김여정 ‘대북재제 先 완화’ 요구엔 눈 감고…“종전선언 흥미롭다”말에 靑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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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기 내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A. 계기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4일 YTN에 출연해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에서 “흥미 있는 제안”이라고 한 뒤 나온 발언이다.

그런데 김여정과 앞서 담화를 냈던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선결조건으로 내건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 ‘선결조건’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실현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선비즈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방남한 당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국립중앙극장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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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외무성 ‘적대시 정책’ 전제로 종전선언 검토 시사

북한은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후 이틀 뒤인 김여정과 리태성이 한 건씩 두 건의 담화를 냈다. 종전선언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면서도, 적대시 정책을 먼저 철회할 경우엔 검토해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먼저 리태성은 종전선언에 대해 “종이장에 불과하다” “종전을 열백번 선언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허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여정은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것이 누구에게는 긴절(緊切·매우 필요하고 절실)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다”며 문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의 앞에는 ‘적대시 정책이 유지되는 한’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리태성은 “종전을 선언한다고 해도 미국의 대조선(북한) 적대시 정책이 남아 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여정도 “현존하는 심각한 적대관계를 그대로 둔” 경우를 전제로 종전선언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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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21-2-CCPT)이 시작된 8월 1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되어 있다. 야외 실기동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실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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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북한의 선결조건에 미국이 어느 정도 응답하고…”

김여정 담화에 박 수석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가 충분히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입장을 이야기했다”며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의 선결조건에 미국이 어느 정도 응답하고, 북한이 받아들여서 대화 계기만 마련되면 (종전선언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했다. “당장 며칠 내라도 마주 앉을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는 체제 안전 보장과 대북제재 완화,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뜻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일관되게 북한의 선(先)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그가 핵무기에 대해 약속한다면 그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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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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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북한 인권도 중시한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제재를 완화할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지만, 동시에 북한 인권 문제도 공동합의문에 못박았다. 북한과 미국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거리는 더 멀어진 셈이다.

◇文대통령 임기 말 ‘중재자론’ 부활하나

결국 평행선을 달리는 미국과 북한을 같은 테이블에 앉히고, 문 대통령이 말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이루려면 중간에서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 ‘하노이 노딜’ 이후 실종됐던 ‘한반도 운전자론’이 부활할 수 있는 셈이다.

김여정도 한국에 ‘운전자론’을 주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남조선(남한)은 늘 자기들이 말하듯 진정으로 조선반도(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하자면 이러한 (선결)조건을 마련하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박 수석은 이 같은 담화 내용에 대해 “미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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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와 하와이 순방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공군 1호기로 귀국 중 기내에서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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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방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용기 내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지금은 북핵이 상당히 고도화됐기 때문에,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따라서 유엔 안보리 제재가 단계적으로 해제되고, 미국이 단계적인 상응 조치를 취하는 투트랙 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 가능성을 낙관했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 조건으로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그런 대화의 조건조차도 대화를 통해 논의하자고 하고 있다”며 “결국은 북한도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북한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종전선언과 한미동맹 관계 없다” 했지만…'적대시 정책’ 하나가 한미연합훈련

문 대통령은 또 종전선언에 대해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북미관계가 정상화된 후에도 한국과 미국이 필요하면 동맹을 하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와는 거리가 있다. 김여정은 지난달 규모를 축소 실시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면서 “합동군사연습은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선결조건’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손상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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