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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여아도 총살”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이 지탄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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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등 애꿎은 희생자 늘어
절차 무시, 용의자 사살 몰두
두테르테 대통령 “다 죽여라”
내년 부통령 당선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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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52세 여성의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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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전쟁.' 표어는 나무랄 데 없다. 영혼과 삶을 망치고, 각종 강력범죄를 확대 재생산하는 마약은 근절 대상이 확실하다. 차단, 단속, 검거, 재활로 이어지는 체계를 탄탄히 갖춰야 한다.

그런데 유독 필리핀 정부가 6년째 치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급기야 국제기구가 반(反)인도주의 범죄로 규정하고 최근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가 자행한) 불법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이라는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라는 필리핀 정부의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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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붙잡힌 마약 사건 용의자들. 아시아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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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리핀의 강경책은 그간 무수한 부작용과 역효과를 양산했다. 법 절차를 무시한 강경 진압, 체포보다 사살에 방점이 찍힌 검거 작전, 아동 등의 애꿎은 희생과 평생 완치되기 어려운 후유증 등은 인권단체의 표적이 됐다. 공식 집계에 잡힌 관련 사망자만 6,600명이 넘는다. 일각에선 1만2,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반영되지 않았다.

반면 마약과의 전쟁 이후 필리핀에서 마약 소비나 관련 범죄가 줄었다는 뚜렷한 조사 결과는 없다. 거대 마약 조직은 건드리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단속 및 검거가 쉬운 거리 마약상이나 구매자를 대상으로 공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3, 4, 5세 아이들의 잇단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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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얼굴을 그려넣은 하얀 천으로 본래 얼굴을 가린 필리핀 시위대가 '마약과의 전쟁'을 멈추라고 필리핀 정부에 촉구하는 모습.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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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9일 오전 7시 40분쯤 벌어진 비극이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동쪽 리잘(rizal) 지역 한 마을에서 마약 밀매 용의자와 경찰 간 총격전이 발생했다. 용의자 두 명과 경찰 한 명이 숨졌다. 그리고 3세 여아 미카도 희생됐다. 소녀의 죽음에 얽힌 경위는 사건 당사자인 경찰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용의자가 (경찰에게) 총을 쏘면서 딸을 총알받이로 썼다." 반박할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은 더 있다. 2018년 7월엔 4세 아이가, 2018년 8월엔 5세 아이가 희생됐다. 경찰에게 끌려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된 17세 소년도 있다. 필리핀 아동보호단체들은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7월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100명 넘는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도시 빈민가에 살던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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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숨진 형제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남성.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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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살아남은 아이들은 영혼이 죽어간다. 11세 소녀는 경찰이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걸 목격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거식증에 빠졌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도 있다. 가족을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서 떠돈다. 국제 아동단체들이 "어떤 아이도 사법적인 살인에 부모나 다른 가족을 잃는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을 부추긴다. 실제 지난해 8월 두테르테 대통령은 TV연설에서 "내가 원하는 건 마약 연루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담당 공무원에게 "(마약사범 사살은) 이미 얘기가 다 된 것"이라며 "(마약 연루자를) 죽여도 감옥에 가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용의자가 사망해 단속 과정에서 벌어진 인명 사고의 전말은 전적으로 경찰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52세 여성이 비번인 경찰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사살된 사건도 있다.

국제사회의 단죄 어려운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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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숨진 17세 고고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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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의 경고도 먹히지 않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2018년 3월 예비 조사에 나서자 필리핀 정부는 이듬해 3월 관련 조약에서 탈퇴하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경찰의 정당방위일 뿐 ICC가 관여할 일이 아니며, 어떤 협조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ICC는 정식으로 칼을 빼 들었다. ICC는 이달 15일 성명을 통해 "2011년 11월 1일부터 2019년 3월 16일까지 필리핀 영토에서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벌어진 살인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 요청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살인 행위는 국가 정책에 따라 이뤄진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민간인 대상 공격이지 적법한 법 집행, 단순한 과잉 방어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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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경찰 행사에서 총을 들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마닐라=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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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대통령이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전 사건까지 추가한 건 해당 기간 다바오 부시장·시장을 지낸 두테르테 대통령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다바오시장 재직 당시 오토바이로 시내를 순찰하면서 마약 용의자를 직접 죽인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훗날 마약과의 전쟁 선봉에 선 '다바오 죽음의 분대'라는 단체 활동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ICC는 "조사는 필리핀이 관련 조약에 자발적으로 가입한 2011년 이후 사건에 국한했다"며 "현재 탈퇴했더라도 가입 기간 벌어진 사건은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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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필리핀 대선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매니 파퀴아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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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필리핀 정부는 국가 주권을 모독하는 ICC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필리핀 대통령궁은 "ICC 조사관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수집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결코 재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ICC 재판을 받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을 것"이라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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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두테르테(왼쪽) 필리핀 대통령과 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마닐라=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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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말에도 여전한 대중의 높은 지지율 역시 두테르테 대통령의 자신감에 힘을 싣는다. 최근 두테르테 대통령은 여당이 내년 대선 부통령 후보로 자신을 공식 지명하자 이를 수락했다. 필리핀은 대통령직이 6년 단임제지만 부통령 등 다른 선출직에는 출마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로는 그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 카르피오(42) 다바오 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43)가 최근 대권에 도전하면서 대항마로 꼽히지만 현재 지지도 면에서 두테르테 부녀에게 뒤진다. ②두테르테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마약과의 전쟁 역시 지속될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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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전쟁'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필리핀 마닐라 경찰청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 마닐라=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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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침묵도 ICC의 조사를 어렵게 한다. ③이미 사망한 피해자가 많은 데다 피해자 유족과 지인들은 정부 보복이 두려워 진술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경찰 서류에 접근하는 일도 쉽지 않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가 ICC의 조치를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환영하면서도 필리핀 권력 구도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약과의 전쟁이 온당한지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이 물을 뿐이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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